2009년 토요타자동차의 사장 교체는 일본 재계에 화제를 몰고왔다. 창업자 4세인 토요타 아키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일본 최대기업 토요타는 1937년 창사이래 71년만에 처음으로 5조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등 누란의 위기에 봉착했다. 사세확장과 무리한 차량 생산확대에 몰두하던 와중에 미국발 금융위기(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무재고 생산방식인 '저스트인타임' 등 제조업 혁신공정으로 찬사를 받던 토요타 신화도 일순간 무너졌다.
이에 토요타는 오너경영 복귀로 승부수를 띄웠다. 토요타 아키오는 토요타 쇼이치로 당시 명예회장의 장남인데, 창업자 가문출신 사장은 1995년 그의 숙부인 토요타 다쓰로 사장퇴임이후 14년만이었다. 이후엔 전문경영인이 3차례 사장을 맡았다. 토요타 아키오의 사장 취임에대해 언론들은 '다이세이 호칸'(대정봉환, 大政奉還)이라 불렀다. 에도(江戶)시대 막부의 마지막 쇼군(將軍)이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국 혼란기인 1867년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한 사건에 비유한 것이다.
물론 창업자 일족의 경영복귀에 기대반 우려반 시선이 엇갈렸다. 오너 경영은 신속한 의사결정, 쾌도난마식 난제해소가 가능하고 사내결속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독단적 경영의 위험이 있고 의사결정의 투명성에도 배치될 수 있다. 특히 경영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될 수 있었다.
그의 취임이후 행보역시 순탄치 않았다. 이듬해인 2010년 가속페달 결함에 따른 대규모 리콜사태로 미국의회 청문회 자리에까지 불려갔다. 설상가상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생산중단 등 악재가 겹쳤다. 그러나 묵묵히 위기수습과 함께 중병에 걸린 토요타에 메스를 대며 개혁 드라이브를 진두지휘했다. 불필요한 공정을 없애고 100여개 차종을 줄이며 비용절감과 내실 다지기에 나섰다. 안팎의 저항과 우려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풀어냈다. 그 결과 토요타는 2014년 이후 글로벌 판매 1천만대 돌파, 1조엔이 넘는 영업이익의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으로 우뚝섰다. 현재까지도 그는 토요타의 수장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취임 당시 아키오 사장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어록은 인상깊다. "기업 풍토가 망가져 버렸다. 땅을 새롭게 갈아엎는 것 외엔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맨땅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얘기였다.
최근 대규모 서비스 장애 사태로 창사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카카오를 지켜보면 토요타의 전례가 오버랩된다. 물론 양사의 업태나 사사, 대내외 여건과 위기 원인 등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 그럼에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할 전환점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카카오의 경우 메신저 사업에서 시작해 13년만에 네이버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IT기업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전방위적 사업확대가 문어발식 확장과 골목상권 침범이란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이어 계열사 경영진의 모럴헤저드와 계속된 쪼개기 상장 논란이 카카오를 탐욕의 상징으로 뒤바꿔놨다. 여기에 서비스먹통 사태까지 터지며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매 위기국면마다 조직혁신과 컨트롤타워 정립 필요성이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몸집은 공룡인데 조직관리는 구멍가게, 사업과 상장은 열심히 쪼개면서 전산실을 왜 안쪼갰느냐는 냉소가 뼈아프다.
카카오가 수렁에 빠지는 와중에 김범수 창업자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부재가 혼란을 키웠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물론 그는 "카카오가 이미 시스템화됐다"며 경영복귀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실추한 이미지와 비판 여론, 흔들리는 조직을 회복시키는 게 전문 경영인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미 지난 7개월간 3차례나 경영진이 교체됐다. 카카오가 뿌리째 흔들리는 비상상황에서 창업자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지금 카카오에 필요한 것은 조직을 쇄신할 강력한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