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소멸이나 멸종이라는 말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 부부 한 쌍이 2명은 낳아야 인구가 유지될 텐데 지난 22일 통계청은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결혼도 안 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가 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여러 복잡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는 특히 일자리 양극화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좋은 정규직에 안착만 하면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취업전선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해 비정규직으로 경력이 풀리면 가난하고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일자리는 마치 빗방울이 분수령(分水嶺)에 의해 동해와 서해로 나뉘어 흘러가듯 대입과 취직이라는 두 번의 경쟁에 의해 확연히 다른 두 삶으로 나뉜다.
이 중 취직이 가장 중요하며 대학입시는 취직을 위한 예비관문일 뿐이다. 주요 기업에 정규직으로 안착하면 노동관계법의 보호 속에 높은 복지혜택과 은행의 좋은 대출조건을 누리며 저축도 하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면 이러한 혜택은 드물고 롤러코스터 같은 시장의 요동을 매일같이 느끼며 불안 속에 살아간다. 일자리가 불안하고 보금자리 마련도 어려우니 결혼 자체가 요원하다. 하지만 정규직에 안착한다고 해도 아이가 생기는 순간부터는 '일자리 분수령 전투' 시즌2가 기다린다. 아이의 취업이 동쪽이냐 서쪽이냐가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아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퍼부어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 급여가 500만원과 400만원 정도의 차이라면 취업은 취향이 될 수도 있지만 같은 노동인데도 700만원과 300만원으로 차이가 난다면 취업은 전투가 된다.
교육의 목표는 훌륭한 인간과 시민을 만드는 것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과 시민이 세상에 기여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일 뿐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현실의 교육은 '좋은 일자리' 안착이 목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분수령이 확연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우수한 학생 중 급여와 무관하게 자신의 꿈을 좇아 전공과 일자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명문 의과대학을 가고도 남을 우수한 학생들이 세계적 과학자가 되겠다며 물리학을 전공하고, 멋진 건물을 만들겠다며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국의 플라톤과 칸트가 되겠다며 철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제한된 정원으로 높은 급여가 보장되는 의학계열로 몰려가고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입사하려 한다. 아니면 고용안정이 보장되고 강력한 노조의 비호를 받는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돈과 인생을 퍼부어 좋은 일자리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다음 세대까지 이런 삶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 힘든 취업전투를 또 치러야 하나?' 젊은 정규직 부부들은 스스로에게 물으며 출산에 고개를 흔든다. 부모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 아이들에게도 먹이고 싶다. 마찬가지로 인생이 달콤하면 아이들에게도 그 인생을 맛보게 하고 싶다. 하지만 가파른 분수령에서 싸우는 취업전투는 격렬하고, 전투가 끝난 자리는 허무한 우리네 삶이 시즌2까지 기대할 만큼 그리 달콤하진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