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의 첫 대선TV 토론(10일)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해리스가 이날 무대를 정책에 대한 토론 대신, 트럼프에 대한 토론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나 이민 정책을 자세히 언급하는 건 해리스에게도 부담이다. 인플레이션 등 경제 지표는 좋지 않고, 이민자 문제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는 주제가 많다. 현직 부통령의 변명은 자칫 분노와 역풍으로 돌아올 여지도 있다.
트럼프는 정책의 피해자 집단과 가해자 집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 '집단'의 경계는 주로 인종·민족·종교와 좌파·우파의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는 TV토론에서 "당신이 어떤 인종인지 상관 않겠다"는 발언으로 굳이 흑인·인도 혼혈인 해리스의 인종문제를 환기시켰다. 또 "당신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자"라며 색깔론을 펼치기도 했다. 이민, 무역, 외교 문제에서도 피해를 입는 '미국인'과 국경을 넘는 '이방인', 국익을 가로채는 '중국인' 등 사안마다 끊임없이 정체성 차이를 강조한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소수 민족, 여성, 성적소수자에 대해 '2등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반대편의 '1등 인간'들을 고취하면서 표를 받아 갔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치적 부족주의'를 처음 언급한 예일대 법학과 교수 에이미 추아의 이론과 맞닿아있다. 그는 "애국심이 사라진 상태에서의 정치적 부족주의는, 민주주의를 '제로섬' 집단 경쟁으로 전락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부족들은 선거, 국가, 미디어, 여론 등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며 "그 과정에서 부족장(정치적 리더)의 잔혹함이나 거짓, 무례함 등을 용납하고 환호한다"고 덧붙였다.
해리스는 2024년 승리의 열쇠가 바로 여기 있다는 걸 깨달은 듯하다. 트럼프가 제멋대로 그려놓은 전선 앞에 끌려가 쩔쩔매지 않는 법. "미국 시민 편이냐 이민자 편이냐"는 질문 뒤에 숨은 트럼프의 '비윤리성'을 역공하는 법. 그리고 수년간 이런 질문에 지친 다수를 위로하는 방법. 모든 것을 포괄하는 '슈퍼 부족'으로서 미국인의 자긍심을 강조하고, 그 역할을 자신만이 해낼 수 있다고 호소하는 방식이다. 해리스는 이날 마무리발언에서 "검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고객(client)은 단 하나, 국민(people)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리스는 눈앞의 대선 승리를 위해 자신을 위한 '부족'들과 손잡는 일까지 떨치긴 어려워 보인다. '해리스를 지지하는 백인 남성들'이나 '해리스를 위한 라틴사람들', '해리스를 위한 흑인들', '해리스를 위한 아시안' 등 크고 작은 후원단체가 해리스 캠프에 등록해 정식 모금 활동을 하도록 두고 있다. 물론 어쩌면 해리스가 선거 막판까지 미국 내 중요한 정치적 갈등과 분노의 지점을 언급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길이 평탄한 승리로 이어질지, '힐러리 2.0'으로 끝날지 50일간 해리스의 변화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