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펜과 칼 : 불신 사회와 음모론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25.02.04 02:05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여러 경우에 사용될 수 있겠지만 보통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는 언론이나 지식인의 굳은 심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중이 접하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고 또 그만큼 정보가 통제되기 쉬웠던 시절의 '펜'은 대중을 위해 폭력에 맞서 진실을 대변하곤 했다.

세상은 변했다. 온라인 기사가 종이신문을 대체하고 사람들은 다양한 검색엔진으로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획득한다. 이제 생성형 AI는 기존 정보를 검색하고 요약하는 것을 넘어 그에 기반해 새로운 콘텐츠까지 조합한다. 최근 소개된 딥시크(DeepSeek)는 저비용·저사양으로 고급정보를 생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 대중이 정보의 바다에서 소외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이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된 '펜'은 여전히 칼에 맞서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다양한 미디어가 편재하는 오늘날 대부분 사람은 이미지나 영상의 형식으로 뉴스나 정보를 접한다. 범람하는 메시지 속에서 글보다는 말이, 텍스트보다는 화면이 더 즉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 유튜브가 된 지는 오래됐는데 이는 모든 세대에서 그러하다. 검색과 추천이 맞물려 내가 원하는(또는 원한다고 생각되는) 정보들이 알아서 제공된다. 원래 글자 수에 제한을 두고 짧은 소견이나 감상을 주고받게 하던 여타의 소셜미디어도 요즘은 쉽게 유통될 수 있는 짧은 동영상 형식으로 주(主) 포맷을 변화시키는 실정이다.

대중에게 소구되는 정보의 형태가 달라지면 그 내용에도 변화가 생긴다. 숏폼으로 유통되는 클립, 소위 '짤'(짧은 영상)들은 앞뒤 문맥도 없이 주목받기 쉬운 워딩 중심으로 편집된다. 자극적인 자막이 더해지는 것은 덤이다. 당연히 논리보다는 감각에 호소하고 사고보다는 감정을 유발한다. 좀 더 긴 호흡의 영상도 마찬가지다. 구독자 수나 뷰수에 따라 수익이 나는 구조다 보니 대부분 논란이나 논쟁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꾸민다. 상업적 목적으로 활동하는 콘텐츠크리에이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편을 가르고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더 심한데 그들의 막말이나 모욕적인 표현들도 소셜미디어에선 걸러지는 게 없다.

교묘한 왜곡뿐 아니라 당당한 거짓말도 부지기수지만 검증과 구분이 쉽지 않다. 인터넷 기사와 검색결과가 혼재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퍼지는 음모론이나 댓글의 내용이 뉴스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다. 팩트체크나 심층기사가 없진 않으나 이러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정보는 쉽게 묻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소셜미디어에선 논쟁과 팩트체크가 또 다른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다.

지난해 별세한 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해 후기자본주의 문화 분석에 탁월한 식견을 보였는데 그에 따르면 음모론의 창궐은 정보의 불평등을 방증하는 것이다. 오늘날 정보의 분배는 부의 분배만큼이나 중요한 이슈다. 정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우리의 인지능력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사회의 도달로 모두가 충분한 정보를 갖게 됐다고는 하나 주도권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집단은 주어진 정보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음모론을 믿었다. 오늘날의 음모론들은 정보의 무분별한 파편화 탓이 더 크다. 원인은 다르지만 해결책은 같을지 모른다.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설명을 찾아내기보다 건강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불신이 뿌리내린 사회에서 누군가가 휘두르는 펜은 흉기처럼 보일 수 있다. 누구나 펜으로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소통의 도구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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