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디지털화되면서 개인의 삶의 흔적과 자산이 온라인에 축적된다. 이메일, 소셜미디어,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과 문서, 온라인 금융자산 등 이른바 '디지털 유산'의 중요성이 날로 커진다. 하지만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누구에게 상속할지에 대한 법·제도는 미비한 실정이다. 최근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고인의 디지털 정보에 접근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식은 정보화 혁명을 넘어 인공지능 시대로 발전해가는 현시점에 디지털 정보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과 제도 사이의 괴리와 함께 디지털 유산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AI 혁신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시사한다.
디지털 유산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개인이 생성한 콘텐츠, 온라인 계정, 디지털 통화, 온라인에서 재산적 가치가 있는 정보, 휴대폰에 작성한 일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디지털 유산은 기존의 유형자산과 달리 온라인이나 디지털 디바이스에 저장되고 암호화되거나 접근이 통제됐고 서비스 제공자의 약관에 따라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상 디지털 유산의 상속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민법 제1005조는 '상속인은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했지만 구체적인 디지털 유산의 유형별로 상속 가능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디지털 정보의 경우 상속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유산 관리의 법제화가 진행된 사례가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49개 주가 '수탁자 디지털자산 접근에 관한 개정통일법'(RUFADAA)을 입법했다. 이 법은 온라인 계정 사용자가 유언이나 온라인 도구를 통해 동의한 경우 유산관리자나 수탁자가 해당 전자통신에 접근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독일 연방대법원도 2018년 판결을 통해 소셜네트워크 계정이 상속인에게 이전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유산 관리를 위한 입법노력이 있었다. 18대부터 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관련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법제화엔 이르지 못했다. 과거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디지털 유산 상속권의 법제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디지털 유산 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유산 관리를 위한 법·제도개선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칙적으로 계정정보 승계를 허용하되 피상속인의 생전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예외적으로 승계 불가능한 정보의 유형을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넷째, 상속인 외 제3자에 대한 승계 또는 관리권한 부여의 합리적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일부 기업은 이미 자체적인 디지털 유산 관리정책을 마련했다. 애플은 '유산관리자제도'를 도입해 사용자가 사망시 자신의 계정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지정할 수 있게 했고 구글도 '휴면계정 관리자' 기능을 통해 일정기간 계정 미사용시 지정된 사람에게 데이터 접근권한을 부여했다.
디지털 유산 관리는 개인의 권리와 프라이버시, 고인의 추모, 유족의 권리,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과 책임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와 법·제도적 뒷받침, 생전에 디지털 유산 처리방향을 결정하는 온라인 도구개발 등 기술 기반의 실천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유산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고 디지털 정보의 가치를 유지·발전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실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