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포스트 미국 시대의 구상

장보형 경제평론가
2025.03.10 02:05
장보형 경제평론가

'힘이 정의'인 세상이 본격화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정상회담은 세계사에 남을 파국으로 끝났다. 미국의 파워를 앞세운 트럼프의 야멸찬 협박이 전후 국제질서 자체를 뒤흔들었다. 지칠 줄 모르는 관세위협을 비롯해 파리기후협정 등 국제협약 탈퇴러시 속에 국가간 협력체제가 와해됐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전후 국제질서는 그저 쓸모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에게 대항하는 무기로 사용된다"고 역설했다.

이런 트럼프가 강구하는 새 질서엔 나름의 위계가 있다. 당연히 미국이 최우선이다. 다음은 자원이 풍부하고 위협요소가 많은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러시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왕따 취급을 받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새 파트너로 떠올랐다. 이스라엘과 중국도 한 자리를 차지할 성싶다. 반면 전통적 동맹이나 우방은 뒷전이다. 오히려 이들의 미국에 대한 의존성과 충성심은 트럼프가 맘대로 악용할 약점으로 간주된다. 사실 미국의 반공, 대중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한 일본,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도 우크라이나처럼 내쳐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세상의 안보와 번영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전후 '미국 세기'의 영광은 이제 막을 내렸다. 대신 자기중심적이고 파괴적인 미국의 행보는 세계 질서에 실로 불안한 함의를 지닌다. 국제 정치컨설팅사 유라시아그룹은 2025년 톱리스크에서 오늘날 "어느 한 세력이나 세력집단도 글로벌 의제를 추진하고 국제질서를 유지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G0의 세상"에서 "1930년대나 냉전 초기 같은 지정학적으로 가장 위험한 한 해"를 경고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내 인생 자체가 거래"라는 트럼프의 주도 아래 "권위주의적 강대국끼리 서로 거래하고 소규모 국가를 괴롭히는 세상"을 영화 '대부'의 주인공 돈 코를레오네 식의 마피아 세상에 비유했다.

이에 따라 점차 미국을 제외한 포스트(post) 미국의 세상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부각된다. 특히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은 이제 위험, 야망, 권력의 기호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유럽위원회(EC) 의장은 유럽 재무장 계획을 내놓는 등 유럽이 권위주의의 부상에 맞선 대응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사실 방위능력에서 독일의 산업 기반은 대륙을 무장시키기에 충분하며 프랑스와 영국의 핵우산은 미국을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엔 이런 대응을 주도할 공동정부가 없고 경제적 파워는 물론 내부의 구심력도 계속 약화한다. 미국을 대신할 보루로 자신하기는 쉽지 않다.

정작 미국의 세기가 막을 내린다는 진단은 꽤 오래전에 나왔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오히려 아시아다. 가령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29%로 유럽의 17%는 물론 미국의 26%를 추월했다. 문제는 아시아의 이런 부상이 미국보다는 유럽의 쇠퇴를 대가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트 미국 시대의 관건은 유럽보다 아시아 내부의 결속, 혹은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이 될 수 있다. 계엄과 탄핵정국으로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진 우리는 여기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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