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차별금지와 국가 안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5.03.17 02:05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국내에선 주목받지 못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차별금지를 앞세운 정치적 올바름(PC) 담론이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그간 국제사회의 핵심의제로 자리매김한 환경, 인권, 공정, 정의, 포용 등의 가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자 역풍을 맞고 있다.

냉전시대엔 미국과 소련의 체제경쟁 속에서 연성 이슈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군사안보가 모든 이슈의 포식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시작된 국제사회의 백가쟁명 속에서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리우 정상회의)가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 다양성 보전을 지구촌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흐름 속에 최근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인 법과 제도로 구현된다. 동시에 그 추진 속도를 둘러싼 갈등도 표출된다. 어떤 이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하기 위한 이런 변화가 너무 느리다고 불만이다. 다른 이는 차별금지라는 명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의 군복무처럼 국가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국가안보 차원의 비판을 견인하는 것 중 하나가 '중국 위협론'이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환경과 사회문제에 집중된 사이 중국은 금융·투자·무역협정, 인프라 프로젝트 등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여러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부채의 덫' '기술지배' '문화침투' 등 소프트파워와 하이브리드 전술을 통해 각국의 정책형성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ESG·DEI 폐기정책은 결국 중국의 영향력 공작 해체에 초점이 맞춰졌다.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차별금지의 가치와 규범을 수용한 대한민국은 지금 딜레마에 빠졌다. '과도한 대중(對中) 의존'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먼저'라는 기치 아래 중국에 경도된 정책을 펼친 문재인정부의 책임이 크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그의 2017년 취임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과거에 한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런데 다양성과 포용성 가치에 매몰된 나머지 중국의 전방위 영향력 공작에 우리 사회가 취약해진 것은 아닐까. 외국 간첩 혐의자의 인권침해 위험을 이유로 간첩법 개정에 미온적인 여러 국회의원이 혹시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포획된 것은 아닐까.

공무원 임용과정에서 허점을 방치해온 정부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 불거진 '화교 출신 공무원' 논란은 현행 국적법상 외국 국적을 가진 이가 귀화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면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공식적으로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중국인이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사실상 중국 국적을 유지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 공무원이 되는 경우와 같이 중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복수국적을 사실상 묵인하기 때문이다. 왜일까. 차별금지라는 가치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안보를 희생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가치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