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 전망은 전망이 없는 것이 전망입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 회장)이 지난 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에서 한 인사말이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AI 시대를 향한 우리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다.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 등장으로 본격화된 인공지능(AI) 시대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글로벌 양강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생존 전략을 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AI 시대는 누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빠르게,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실험하고 그 속에서 정답에 가까운 길을 찾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다.
이는 비단 AI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 산업을 여는 것은 대부분 '가보지 않은 길'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그 길을 먼저 가본 쪽이 생존 확률이 높다.
중국과 미국의 미래먹거리 전략은 이 점에서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중국은 통제로, 미국은 자율로 빠르게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규제에 발이 묶여 출발선에서 망설이고 있다.
1년여 전, 권영수 당시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중국 배터리 산업이 빠르게 한국을 추격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로 '강제적 데이터 중앙집중화'와 '언론통제'를 들었다. 둘 다 공산 체제에서나 가능한 비민주적 방식이다.
중국 정부는 배터리 사고를 포함한 각종 전기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중국 공업정보화부'의 중앙 플랫폼에서 관리하고, 이를 배터리 제조업체 및 전기차 제조사와 공유한다. 정부가 빅브라더가 돼 데이터를 모으고 분배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사고는 보도를 통제해 외부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정보를 통제해 내부적 논란을 줄이면서 중국은 빠르게 학습하고 기술을 개선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도 다르지 않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이들의 제품을 사는 수요기업에도 보조금을 지급했다. 기술력은 아직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실제로 2019년 1% 미만이던 중국산 메모리의 자국 채택률은 지난해 10%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AI 모델인 딥시크(Deep Seek)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정부의 통제보다 시장의 자율을 중시했다.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 그것이다. 할 수 없는 것만 법으로 정하고 그 외는 모두 허용했다. 쉬운 예로 미국에선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만 'U턴 금지' 표시를 했다. U턴 금지 표지가 있는 곳 외에는 아무 곳이나 U턴이 가능하다. 이런 네거티브 규제는 창업이나 신기술 테스트에 장벽이 없다는 얘기다. 세상에 없는 기술이 미국에서 탄생하는 이유다.
한국은 정반대인 포지티브 규제다. 안전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U턴이 원칙적으로 금지다. 이 방식은 과거 누군가 이미 가본 길을 따라가던 '패스트 팔로어' 시대에는 유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해진 길이 없는 미지의 불확실성 시대에는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봐야 한다. 현재 우리의 규제로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AI 시대는 곧 데이터가 힘이다. 정부 보조금으로 개발된 제품에서라도 데이터를 모아 국가 차원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가 무슨 돈이 되냐"고 묻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그 이름이 '국가 빅데이터청'이든 '정부통합 빅데이터 센터'든 상관 없다. AI 시대 실패의 확률을 줄이려면 경험을 공유하고 '경우의 수'를 함께 실험해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규제 방식의 전환이다.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인재와 기술이 있어도 경쟁에 뒤진다. 통제의 중국 방식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율의 미국 방식으로 가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변하면 결코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