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시에서 태어나느냐가 운명을 좌우한다.'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이언 골딘,톰 리-데블린) 속 한 장의 제목이다. 도시를 국가로 바꿔도 무방하다.
저자들에 따르면 '지식기반 경제'에서 '집적'의 힘은 훨씬 중요해졌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파리 등과 같은 슈퍼스타 도시가 등장한 것도 인재가 모이고 고숙련 인력이 필요한 기업이 몰려들고 그리고 다시 인재가 모이는 선순환이 됐기 때문이다. 직장 안팎에서 만나 교류할 때 정보는 더 잘 흐르고 지식노동자들은 서로 가까이에 있을 때 생산성이 높아진다. 물리적 접근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과 지식을 이끌어내고 슈퍼스타 도시들은 기업을 자석처럼 끌어들인다. 슈퍼스타 기업도 탄생하고 성장한다.
물론 그 반대현상을 겪는 곳도 있다. 1980년대 미국의 다섯 번째 대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14위로 밀렸다. 1970년대 후반 1인당 소득이 뉴욕의 90%였던 세인트루이스도 마찬가지다. 1980년 23개였던 포춘 500대 기업의 본사가 23개에서 8개로 줄어들면서 1인당 소득이 뉴욕의 67%에 불과하다. 인재는 지식경제의 허브도시로 흡수된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서도 나타난다. 기업들이 좋은 인력을 뽑기 위한 남방한계선이 판교가 됐다는 얘기가 단적인 증거다. 인재가 메마른 지방도시에 기업들은 가지 않는다.
인재의 도시간 이동뿐만 아니라 국가간 이동도 활발하다. 영어와 수학·공학지식으로 무장한 인재들은 국경을 넘나든다. 실리콘밸리, 싱가포르, 런던 등지의 빅테크(대형 IT기업)에서 일하는 인도인과 중국인을 생각하면 된다. 같은 능력을 갖췄을 때 인재는 보상이 적은 곳에서 많은 곳으로 옮겨간다. 한국의 인재들도 나라 밖으로 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1만명당 AI기술 보유자 순유출은 -0.30명이었다. 반도체분야의 경우 마이크론(미국, 싱가포르, 대만)과 엔비디아(미국) TSMC(대만, 일본) CXMT(중국) 등으로의 이직이 목격된다.
한국 국가석학 1, 2호는 연구할 곳을 못 찾아 중국 대학으로 갔다. 십수 년 동안 등록금이 동결되고 교수들의 급여가 정체되면서 학자들의 탈주는 더 심화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홍콩과학기술대로 옮기는 사례를 보면 해외 수요가 있는 전공은 다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공계 박사학위자들은 미국 빅테크나 국내 대기업 수준에 못 미치는 대학교수 초임을 놓고 선택을 고민하지 않는다. 예산부족에 허덕이는 대학들은 최첨단 기자재도 갖출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최고의 인재가 배출될 수 없다. 이는 기업들의 인재난으로 귀결된다.
의대쏠림 현상을 탓하지만 이는 어떤 것의 결과일 뿐이다. 2013~2022년 의대정원은 3만명이었다. 그 3만명을 걱정할 게 아니라 왜 그 시기에 그보다 10배가 넘는 34만명(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추산)의 이공계 졸업생이 해외로 갔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문제는 탈이공계가 아니라 탈한국이다.
이 같은 엑소더스를 되돌리기 위해 위 책의 저자들은 "정부, 기업, 지역사회 전반이 참여하는 수십 년에 걸친 전체적이고 통합된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중국의 천인계획(千人計劃)과 같은 국가 차원의 노력,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대학 등록금 정상화 등이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AI분야에 100조원을 투자하고 병역특례를 확대하겠다고 하고, 김문수 후보는 AI인재 20만명을 양성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대학 정책과 연계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이고 치밀한 '인재전략'과는 거리가 있다. 인재를 기르고 지키는 시스템이 없고 양성된 인재를 아끼지 않는다면 운명을 바꾸려는 이들은 보다 번성하는 도시와 국가로 갈 것이다. 이렇게 인재의 탈주가 일어나는 도시나 국가가 흥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