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이번 정부가 천명한 'AI(인공지능) 3대 강국'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의료AI에서 시작하자는 화두를 던졌다. 한국은 지난 몇 년 새 의료AI 기술, 산업, 규제 등 전방위적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여기에 국가의 전략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한국은 이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버린 AI 측면에서도 의료AI를 단순히 외국 기술 의존도를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공격적, 전략적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칼럼에선 의료AI를 한국이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각론을 논해보려 한다. 의료AI는 기술, 산업, 규제, 현장도입 등이 맞물린다. 가장 필요한 돌파구는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하나의 국영 의료보험만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도입에 보수적이다. 때문에 좋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도 사업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최근 혁신의료기술,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등이 마련되며 약간의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일례로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AI는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돼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비급여로 환자에게 과금할 수 있는 금액에 상한이 존재한다. 이 상한이 지나치게 낮을 뿐만 아니라 비급여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이 법령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현재 비급여는 질병이 달라도 하나의 검사엔 한 번만 청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환자에게 받는 동의서의 양식, 항목, 횟수 등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의료AI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한다면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파격적이고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 독일은 2019년 디지털헬스케어 특별법을 제정하며 디지털 치료제로 인허가를 받으면 수가까지 지급하는 DiGA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하에선 최소한의 요구사항만 갖추면, 심지어 치료효과를 증명하지 못한 디지털 치료제도 최장 24개월 동안 임시등재가 가능하다. 더구나 첫 12개월 동안의 가격은 정부가 아닌 업체가 결정한다. 분명 비효율적이고 재정을 낭비할 가능성이 있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 덕분에 디지털 전환에 늦었던 독일이 디지털 치료제 분야만큼은 전 세계 회사가 앞다퉈 찾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미국의 MCIT 역시 참고할 만하다. 미국 보험청이 2020년에 제안한 제도로 혁신의료기기로 규정된 의료기기가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만 받으면 자동으로 무려 4년 동안 메디케어 보험급여를 미국 전역에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여러 논의 끝에 결국 시행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한마디로 지나치게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해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제안한 '전 국민 무료 AI바우처'를 의료AI 버전으로 응용해볼 수도 있다. 바로 병원에 의료AI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료AI는 병원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것이 현장도입의 시작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의료AI 도입에 대한 병원들의 관심도가 크게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선 병원에 바우처를 제공해 의료AI를 도입할 수 있는 마중물을 제공한다면 의료AI 도입-산업-기술-데이터가 맞물리는 선순환 구조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메타가 AI인재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무려 1000억원의 연봉을 제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이 AI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정면으로 경쟁하기보다 경쟁력 있는 분야를 선택해 전략적으로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필자는 그 분야가 의료AI라고 확신한다. 의료AI 분야는 한국이 '3대 강국'이 아니라 '1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