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가 최근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사건과 관련해 1인당 30만원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권고하는 조정안을 내놨다. 형식은 권고이나 실제로는 기업에 상당한 압박을 주는 준(準)규제에 가깝다.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하지만 법원의 화해 권고와 동일한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법적 판단으로 보기도 해서다. 이런 관점에서 일각에선 과징금 부과와 별도로 부과하는 '중복제재'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번 조정안은 양쪽으로 논란이 많다. 금전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정신적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워서다. 특히 정신적 피해는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는 피해자에 따라 백이면 백 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죄송합니다"라는 최고경영자의 사과 한마디를 수십만 원의 보상액보다 더 듣고 싶어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이번 사태로 인해 실제 수십만 원의 피해가 있었을 수도 있다. 기업이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사과와 배상을 하려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징벌적 과징금과 대규모 손해배상이 예상될 때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대처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선제적인 조치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가능하다.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입장에서 1인당 30만원의 배상액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일 수 있다. 그런데 기업 역시 해당 조정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분쟁신청자가 3998명(11억9940만원)이지만 기업이 조정안을 수락할 경우 전체 고객으로 확대돼 최대 7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조정안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과 주주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조정안은 실제 금전 피해 입증 여부와 무관하게 (사실상 수천만 명에게) 일률적인 정신적 손해를 인정하고 배상액 또한 10만원 수준이던 기존 판례 대비 3배 수준으로 설정됐다. 이는 실제 피해 발생 여부, 법리 기준, 제도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모두 고려할 때 과도하고 비합리적이라는 게 통신업계의 입장이다. 애초 신속하고 자율적인 분쟁 해결을 목표로 도입된 제도라는 측면에서 균형 잡히지 않은 조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K텔레콤은 이번 사고 직후 위약금 면제, 데이터 무상제공을 비롯한 5000억원 규모의 고객감사 패키지 제공, 5년간 7000억원 규모의 보안 투자 등 법적 의무를 넘어서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고객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이로 인해 3분기 당기순손실은 1667억원을 기록했고 분기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면서 콘퍼런스콜에서 항의도 받았다. 코스피지수가 계속 상승세인 반면 SK텔레콤의 주가는 최저가 수준이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선제적 조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소송으로 가면 조정안은 갈등과 사회적 비용만 높이는 셈이 된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은 일관되게 '단순한 불안감이나 추상적 불쾌감만으로는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조정이 감정적 보상 중심으로 흐르면 제도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정위는 본래 소송 전 단계에서 피해자와 기업 간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타협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이를 성공적으로 끌어내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수긍할 수 있는 '균형'이 필요하다.
정보보호산업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신고하고 복구를 추진한 기업이 동일한 수준의 배상 부담을 지게 되면 앞으로 누가 자진 신고를 하겠느냐"며 "결국 '협조할수록 불이익을 받는 구조'로 바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과징금 부과나 조정안은 기업들이 "방어적 대응보다 선제적 조치가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피해 예방과 신속한 대응을 막는 구조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 조정제도 역시 '합리적 타협의 장'으로 자리 잡을 때 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신뢰받는 제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