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밑빠진 독에 '시골의사' 붓기

정심교 기자
2025.11.26 05:3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시골 사람은 아파도 참아야 하나", "시골 살면 응급실 뺑뺑이가 당연한가".

농어촌 등 지역 주민들의 이런 읍소를 끊어내겠다고 이재명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지역의사제'다.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일할 의사를 선발하겠다는 '지역의사법안'이 법제화의 급물살을 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수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법안은 지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의 일부를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뽑아 학비 등을 지원하고, 의사 면허 취득 후에는 정해진 지역 내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규정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시정명령을 거쳐 면허를 정지하고, 면허정지가 3회 이상 쌓이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전문의가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형 지역의사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법안에 담겼다. 이 법안이 국회 법제심사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공포 2개월 후 시행된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 고등학교 2학년이 치르는 2027학년도 의대 신입생부터 적용된다. 의대생을 선발할 때부터 '향후 최소 10년간 지역에서 반드시 일해야 하는 의사'를 배출하겠단 건데, 과연 이렇게만 하면 무너진 지역의료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최근 '붕괴한 지역의료 생태계를 되살릴 방법'에 대한 물음에 강원도 시골의사(조희숙 강원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는 "지역의료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이어 그가 한 말은 "지역의료에 생태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논할 게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 지역의료는 이미 '헌신짝'처럼 피폐해졌다는 얘기다.

'예비 지역의사'가 선발돼도 이들이 '실력 있는' 전문의까지 되는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들을 키워낼 지역 수련병원들이 폐원 위기에 처했고, 지역의 지도전문의(의대 교수)들마저 수도권으로 이탈하고 있어서다. 2027학번 '예비 지역의사'가 전문의가 되려면 최소 10년은 걸린다는 점에서 지역의료 공백 장기화는 불 보듯 뻔하다.

이에 정부는 지역의사 공백을 당장 메꾸기 위한 복안으로 '한의사' 활용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국회에서 제기된 '공중보건의사 감소에 따라 한의사의 참여와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24일 밝혔다. 하지만 응급환자를 1차 처치하거나, 외과 수술까지 할 수는 없어 이런 복안이 의사 공백을 완전히 메꿀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전공의들은 "황무지(열악한 지방의료 인프라)를 개간한 후 씨앗(예비 의사)을 뿌려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이미 금 가고 구멍 난 독(지역의료)에 물(지역의사)만 부어 넣었다간 독이 깨지고 무너질 수 있다. 더 큰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헌 독을 새 독으로 바꿀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 지역 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인의 모범도 중요하다. 지역에서 당장 치료받을 수 있다면 '서울행'이 아닌, 그 지역 의료기관에서 진료받는 정치인의 모범사례가 지금보다는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정심교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차장.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