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발장 이야기로 유명한 소설 '레 미제라블' 후반부엔 무장봉기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 사건이 프랑스의 어떤 혁명을 모티프로 삼았는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선택한 건 1789년 대혁명도, 1830년 7월 혁명도, 1848년 2월 혁명도 아니다. 소설에 그려진 사건은 실패한 혁명으로 기록된 1832년 6월 봉기다. 프랑스의 대문호는 왜 성공한 혁명들을 놔두고, 단 이틀 만에 진압된 봉기를 작품에 썼을까.
프랑스는 1830년 혁명으로 전제군주 샤를 10세를 몰아내고 입헌군주 루이 필립을 세웠다. 그러나 루이 필립은 부자들에게만 선거권을 줬다. 기층민과 공화주의자들은 "혁명을 도둑맞았다"며 반발했다. 설상가상으로 1832년 봄 파리엔 콜레라가 창궐했다. 빈민가를 중심으로 2만명 가까이 숨졌다.
분노는 임계치를 넘었다. 그해 6월5일 왕정 타도를 위해 공화주의자들은 무장봉기에 나섰다. 민중파 정치인 라마르크의 장례식이 계기였다. 혁명군은 파리 중심가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세웠다. 레 미제라블에선 생앙투안 거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품에서 장발장은 양녀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리케이드에 뛰어든다.
당초 혁명군은 자신들이 앞장서면 파리 시민들이 함께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고립된 혁명군은 10배의 정부군을 상대로 싸웠다. 이틀 간의 시가전 끝에 혁명군은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사상자는 양쪽을 합쳐 800여명에 달했다.
소설에서 죽음을 예감한 혁명군 지도자 앙졸라는 전투를 앞두고 동지들에 호소했다. "비록 오늘 우리가 죽을지라도 우리가 흘린 피는 내일의 정원을 꽃 피우는 비가 될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멀지 않았다."
#2. 빅토르 위고가 실패한 1832년 봉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은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이 봉기는 위고가 서른 살에 직접 겪은 사건이다. 1830년 혁명까지 위고는 공화주의자보단 온건한 왕당파에 가까웠다. 이후 신념의 변화를 겪다가 처음으로 직접 봉기를 경험하고 공감한 게 1832년이었다.
둘째, 위고는 소설에서 혁명의 성과보다 혁명 그 자체를 숭배하는 청년들의 순수함을 그리려고 했다. 앙졸라가 이끄는 혁명조직 'ABC의 친구들'에 위고는 자신의 30대 시절 사상을 투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공'보단 '실패'가 더 현실적이고 보편적이다. 우리 대부분은 삶에서 성공보다 실패를 더 자주 경험한다. 소설을 '근대의 문학' '자본주의 문학'이라고 부르는 건 소설이 시보다 더 보편적이고, 그래서 상업성이 높아서다.
실패는 영혼에 더 큰 흔적을 남긴다. 회한일 수도 있고, 비애일 수도 있다. 그 울림은 성공보다 오래 간다. 수많은 고전 소설들이 해피엔딩 대신 새드엔딩을 선택하는 이유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조지 오웰의 '1984',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이 그렇다.
#3. 지난 2025년에도 우린 수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미처 못 산 집 값이 뛰어서. 전월세 값이 올라서. 코인 가격이 내려서. 실적 목표를 못 채워서. 승진에 탈락해서. 시험에 떨어져서.
그러나 실패는 특별하지 않다. 성공보다 흔한 게 실패다. 대개 성공은 혼자 하지만, 실패는 그렇지 않다. 홀로 자책할 필요 없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는 끝이 아니다.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필요한 건 좌절을 딛고 다시 도전할 용기 뿐이다. 한 번 더 일어설 수 있도록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 남긴 한 문장과 함께 2026년 새해를 시작하면 어떨까.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