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초의 참사'
시대를 앞서간 천재 아티스트 백남준이 1982년 미국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 앞 도로에서 선보인 공연의 제목이다. 그가 "세계 최초로 보여드린다"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던 이 퍼포먼스는 자신이 1964년에 제작해 18년간 데리고 다니던 'K-456'이란 로봇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량에 치여 망가지는 순간을 보여준 것이다. 모차르트 작품의 쾨헬 번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K-456'은 걷거나 손을 흔들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라디오 스피커로 만든 입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재생하거나 배변을 하듯 콩을 몸체 밖으로 내보낼 수도 있었다. 특히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을 선고받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예술계 안팎에선 백남준이 인간적인 감성을 지닌 채 삶과 죽음을 겪는 인간화된 기계, 오늘날 우리가 '휴머노이드(인간형)'라 부르는 로봇의 등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사회와 인류에게 가장 먼저 던졌단 평가가 나왔다.
무엇보다 백남준이 'K-456'을 움직이는데 5명의 기술자가 필요하다면서 일자리 창출 로봇이라 불렀단 일화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생산현장 투입 예고로 촉발된 일자리 대체 논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통신) 전시회 'CES 2026'에서 '아틀라스'를 공개하면서 2028년 미국 내 생산공장인 HMGMA(메타플랜트아메리카)에 도입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사실 로봇과 연계된 노동자의 불안한 미래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고 있는 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참석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서 진행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WEF 임시 공동의장)과의 대담에서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가 이미 공장 내 단순 작업에 일부 활용되고 있고 올해말엔 더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며 "내년말 휴머노이드 로봇을 일반 대중에게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한게 대표적이다.
그러자 일자리 상실에 대한 공포가 덮친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이젠 인간이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이 로봇을 만들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게 된다"면서 "노사 합의 없인 단 1대의 로봇도 국내 생산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과거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이 산업화를 막지 못했듯 '로봇과의 공존'이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오죽하면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면서 "어차피 올 세상이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일갈했을까.
일단 현대차 노조가 속해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양경수 위원장이 최근 "AI나 기술 발달을 저해하거나 막을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선 건 다행이다. 물론 "암담하지 않겠냐"(이 대통령), "충격으로 다가온다"(양 위원장) 등의 반응처럼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절박함도 이해는 간다. 그런다고 로봇이 없는 세계로 되돌릴 수 있단 얘긴 아니다. 앞서 타이밍을 놓쳐 애플이나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밀렸던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같은 사례에 비춰볼 때 휴머노이드는 재앙이라기보단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틀라스의 진화와 함께 요동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주가나 시장의 기대감이 단적인 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들고 AI 혁명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초호황기에 대박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과 같이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음 바통을 이어받기 위해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위에 상생을 위한 재계와 노동계의 현명한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로봇공학이 세계 경제의 폭발적 성장을 촉진할 것"이란 머스크의 예언이 실현될지를 결정할 운명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