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人和)를 자랑으로 삼아왔던 LG 그룹 내 가족간 송사가 2023년 2월 소송제기 후 약 3년만에 일단락났다. 세간에는 이번 민사소송 1심 판결로 원고(고 구본무 선대 회장의 부인과 딸들)와 피고(아들 구광모 LG 회장)간 '승패'로 이야기하지만 LG 그룹 입장에서는 모두가 패자인 지리한 싸움이었다.
화합의 상징이었던 LG 그룹의 이미지는 창업자 집안 내에서의 상속 재산 다툼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재판부의 조정 권고와 재판부 변경 등으로 재판이 길어지면서 원고와 피고를 대리하는 율사들은 시간을 벌었지만 구광모 LG 회장이나 모친인 김영식 여사는 그 시간에 비례해 상처는 더 깊어졌다.
법의 심판대에서의 결과는 원고인 김 여사와 두딸(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구연수씨)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70년을 이어온 LG 그룹의 역사를 거슬러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부까지로 이어지는 과정을 짚어보면 모두에게 아픈 상처가 됐다.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세상에 오랜 전통과 가풍을 이야기하면 구식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 역사 흐름의 결과이고, 생명체와 같은 기업도 과거 역사 없이는 현재가 존재할 수 없다.
LG 그룹의 성장과정에서 쌓인 부는 창업자와 2·3대를 거쳐 내려온 열정과 그와 함께 한 수많은 종사자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고 구본무 선대 회장이 남겨준 유산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LG 그룹이 지녔던 가풍을 보면 선대 회장의 바구니에 담긴 재산들은 형제자매와 삼촌들의 몫도 담긴 LG 기업가문의 재산이 분명하다.
창업자인 연암 구인회 회장에서부터 장남인 상남 구자경 명예회장을 거쳐, 장손인 화담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진 역사의 산물이다. 그 과정에서 LG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오기 위해 곳간의 열쇠를 장자에게 맡긴 것이다. 선대 회장이 타계하기 전 그 열쇠를 양자인 구광모 회장에게 맡긴 결정을 두고 벌어진 게 이번 송사의 핵심이다.
재판부가 설명문에서 설시한 것처럼 (주)LG 주식 뿐만 아니라 LG CNS와 일부 예금자산 등 '경영재산'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LG의 역사에 이어져온 공동경영의 산물이다.
아버지 재산이기 이전에 집안의 장자로서 기업가문을 지키기 위한 선량한 관리자에게 맡겨진 금고의 열쇠라는 게 LG가(家)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현재 LG가의 최고 어른인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도 여러 자리에서 가족간의 송사는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며 화합을 당부하기도 했다.
다툼의 1차적인 판단은 법원의 1심 선고로 끝났다.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원고들의 자유의지에 이뤄진만큼 다툼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이다. 원고 변호인은 이번 재판 결과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판결문을 받아본 후 원고의 뜻에 따라 항소 여부를 결정짓겠다고 법정을 나서면서 말했다.
변호인 입장에서 소송의 장기화가 손해일 것은 없다. 하지만 LG 기업가문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이제는 다툼보다는 화해의 시간으로 가야 한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 그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더 이상의 논란과 분쟁을 멈추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는 길만이 화담의 뜻을 기리는 일이다.
2008년 모친인 하정임 여사가 타계한 그 해 겨울 설 명절에 진주 단목의 외가집 문 앞에서 모자를 눌러 쓴 채 시골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을 짓고 있던 화담의 모습이 선하다. 외가집 담장의 '사모정(思母井)'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구 선대 회장이 하늘나라에서 부인과 아들이 '화담(和談)'하기를 간절히 바랄 듯하다.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어릴 때 어머니를 여윈 아들이 맺은 인연은 귀하다. 설 명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다시 가족으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