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새벽배송, '반쪽 자유'의 모순[우보세]

유엄식 기자
2026.02.2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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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하역장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규제가 풀린다는데 마다할 리 있겠습니까. 사업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정부와 여당이 지난 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추진을 결정한 뒤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2012년부터 14년간 시행한 규제 족쇄를 푸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법 개정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탐탁지 않아서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여야 시절 가리지 않고 대형마트를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주력 지지층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보호하겠단 명분을 앞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쿠팡 정보유출 사태를 계기로 당내 분위기가 급변했다.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 환경이 변했고 현행 오프라인 중심 유통 규제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민주당 대변인의 설명은 당정의 엄포에도 꿈쩍 않는 새로운 '유통 공룡' 쿠팡을 보면서 뒤늦게 '대항마'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단 자기 고백처럼 들렸다.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역차별이란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쿠팡 매출은 41조3000억원으로, 대형마트 전체 판매액(37조1000억원)을 넘어섰다. 당정이 이런 흐름을 이제야 알았을 리가 만무하다.

정부는 불과 한 달 전까지 민주노총의 제안을 받아들여 심야배송(오전 0시~4시) 근로시간을 제한하려는 행보였다. 쿠팡과 컬리 소속 14명의 배송 근로자에 대한 심박수와 노동강도를 측정해 '적정 노동시간'을 산출한 용역 보고서의 결론은 "새벽배송 근로자의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 주 40시간으로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근로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새벽배송을 규제하려다가 대형마트에도 그 길을 열어주겠다는 건 모순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새벽배송 규제가 풀리면 대형마트 업계는 '배송 시간은 제한이 없다'는 전제로 인력 확보와 시설 확충에 나설 텐데, 정치권에서 또 말을 바꿔 시간제한을 둔다면 그 손실은 누가 보상할 텐가.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을 재개하면 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란 전망도 불투명하다. 2020년대 초반 여러 오프라인 기반 유통사가 새벽배송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2~3년 만에 접었다. 매달 수 백억원대 물류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쿠팡은 외부 투자를 유치해 지난 10년간 수조원의 적자를 감내하며 전국에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대형마트는 기존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이를 새벽배송에 활용하려면 내부에 고도의 자동화 설비를 깔아야 한다.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고 지금처럼 정책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은 '반쪽 자유'란 업계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월 2회 의무휴업일이 풀리지 않는 한 365일 배송하는 이커머스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단 이유에서다. 대형마트만 한 달에 두 번 새벽배송 주문을 못 하면 이커머스에서 갈아탈 이유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정치적 타협안이 아닌 소비 트렌드 변화를 반영한 과감한 제도 혁신이다.

유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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