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자연은 왜 이 계절에 '튀어 오르다'라는 의미의 '스프링'(spring)이란 역동적인 이름을 붙였을까. 겨울이라는 거대한 압력이 존재했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반작용'의 미학을 나타내는 듯싶다. 유달리 추웠던 지난겨울, 경제적 한파, 단절된 관계, 그리고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시대적 불확실성은 우리 마음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추위도 결국 물러가고 봄은 다시 우리 곁에 찾아왔다. 작은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오고 마른 가지 끝에서 연둣빛 잎망울이 터져 나와 생동감의 절정을 이룬다. 아마 가장 매서운 바람이 부는 순간에도 봄의 꽃은 이미 겨울의 땅 밑에서 희망을 꿈꾼 듯싶다.
샘(spring)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뭄이 들어도 땅이 갈라져도 지하 깊은 곳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 거대한 지각을 뚫고 솟구쳐(spring out) 멈추지 않고 흘러 활기찬 생동감으로 기어이 승리의 봄을 적신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양이지만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의 특징은 '지속성'이다. 샘물은 바위를 만났을 때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고 비켜 흐르며 기어이 길을 찾아내는 유연성도 있다.
스프링이란 단어에는 봄과 샘 2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계절로서의 봄은 회복과 재생을 상징하고 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근원을 뜻한다. 이렇듯 스프링은 '튀다, 솟아오르다'라는 동작을 뜻하는 것으로 '봄'이나 '샘'을 일컫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으니 바로 '용수철'이란 의미다. '용수철'(龍鬚鐵)은 문자 그대로 '용의 수염 같은 쇠'라는 뜻에서 나왔다. 이는 탄성과 복원력이 뛰어난 금속 코일을 나선형으로 감아 만든 장치로 압축이나 비틀림에 따라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과학적 원리와 바람에 휘날려도 끊어지지 않고 원래 모양을 유지하는 용의 수염처럼 질기고 유연하다는 성질을 빗댄 상징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강한 것은 부러지지만 탄성을 가진 것은 휘어질지언정 굴복하지 않는다.
이렇듯 에너지 저장·복원 과정인 용수철의 탄성 원리는 사회적 맥락에서는 위기와 역경을 견디고 회복하는 능력인 '리질리언스'(resilience)와 맞물린다. 꽉 눌려 있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spring up)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큰 충격이 발생한 후에 이전의 상태로 신속히 돌아가는 '바운스 백'(Bounce Back)을 의미했다. 하지만 복잡한 위험(risk) 요인이 깔려 있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단지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늘의 패러다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보장받지 못하는 혼돈의 시대일수록 어떤 상황에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수시로 발생하기도 하고 예측 자체가 잘못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단순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힘'을 넘어 충격을 흡수하고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힘, 이를 기회로 재창조하는 능력, 즉 '바운스 포워드'(Bounce Forward)하는 자만이 불확실한 미래에 승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
단단한 얼음 밑에서 씨앗이 견디는 시간은 정지가 아니라 대지를 뚫고 나갈 탄성을 기르는 치열한 준비기다. 겨울은 봄을 지우지 못한다. 역사는 한순간도 순탄하게 흐르지 않았다. 역사는 언제나 거센 압력에 저항하며 솟구친 '샘물'들에 의해 그 물길이 바뀌어왔다. 용수철처럼 눌리면 튀어 오르고 막히면 솟구치는 그 역동적인 반작용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고결한 생명력이다.
리질리언스의 원리는 '단단함'이 아니라 '유연함'에 있다. 위기는 우리의 겉모습을 일시적으로 찌그러뜨릴 수 있지만 우리 존재의 근원인 '샘'(spring) 자체를 메마르게 할 수는 없다. 진정한 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굴복하지 않는 의지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봄이 언제 오느냐고 묻지만 나는 그들에게 당신이 언제 봄이 될 거냐고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