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다친 아이가 갈 곳 없는 나라

[우보세]다친 아이가 갈 곳 없는 나라

박미주 기자
2026.04.14 05:26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응급실 앞에 앰뷸런스가 출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인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응급실 앞에 앰뷸런스가 출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인한

"현재 소아신경외과는 펠로우(전임의)가 전국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특히 지방은 야간·주말에 진료할 소아신경외과 교수가 거의 없어, 소아에게 당장 수술해야 하는 뇌출혈이 생겼을 경우 수도권 쪽으로 오다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김상대 대한소아청소년신경외과학회장(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소아신경외과 후대가 끊겼다고 우려했다. 어린이도 불의의 사고를 통해 뇌출혈 등 위급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엔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의 생명을 살릴 소아신경외과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최근엔 국내 의료체계의 보루인 서울 '빅5' 대형병원 응급실에서도 진료를 거부당하고 '응급실 뺑뺑이'를 겪게 된 사례도 발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10세 남아는 달리다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돌바닥에 부딪쳤다. 다음 날 해당 남아는 한쪽 팔에 힘이 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증상을 호소했다. 남아의 보호자는 뇌출혈을 의심하고 아이와 함께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병원에선 소아신경외과 의사가 은퇴 예정이라 초진 환자를 보기 어렵다며 사실상 진료를 거부했다.

이에 보호자는 119에 전화해 갈 수 있는 병원을 문의했다. 그러나 119조차 소아신경외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알기 어렵다고 했다. 보호자가 일일이 병원에 전화해 진료 가능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들은 소아신경외과 진료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다. 막막했던 보호자는 다른 대형병원 소아응급의료센터까지 직접 간 뒤에야 아이의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이는 국내에서 소아 응급 진료체계가 무너진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현 구조에선 소아 뇌출혈 환자가 발생하면 의료 컨트롤 타워가 없어 환자가 적기에 진료를 받을 응급실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다 자칫 골든타임을 놓치고 생명이 위독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계에선 신경외과 의사들마저 어린 아이를 진료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한다. 한 외과 전문의가 장이 꼬여 위급했던 신생아를 진료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법원은 소아외과 전문의가 아닌데 진료했다며 병원과 외과 전문의에게 각각 10억원,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의사들의 소아 기피 현상이 심화한 배경이다.

이대로라면 다친 아이가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의료 불능' 사회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늦기 전에 무너진 의료 안전망을 재건해야 한다. 합리적 의료사고 배상 체계 마련과 사법 리스크 완화를 비롯, 소아 고난도 수술 수가의 현실화, 필수의료 인력 양성 등 논의가 필요한 때다.

응급 환자가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119마저 수용 가능 병원을 찾아 헤매도록 하는 의료 컨트롤 타워 부재의 해결도 시급하다. 다행히 지난달부터 보건복지부가 호남권에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런 모델이 하루빨리 전국으로 확산돼 응급실 뺑뺑이가 사라질 날이 오길 기대한다.

박미주 기자
박미주 기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박미주 기자

보건복지부와 산하기관 보건정책, 제약업계 등 담당합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