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기술을 넘어 신뢰로, 토큰증권의 첫 걸음

소윤권 엔버스 대표
2026.02.26 02:05
소윤권 엔버스 대표.

수년간 이어진 디지털자산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끝에 토큰증권(STO)의 근거가 되는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이 지난 1월15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히 새로운 금융상품 하나가 추가된 사건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문법이 한 단계 확장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동안 디지털자산과 증권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던 제도권 논의가 입법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물론 법안통과가 곧바로 시장의 전면적인 활성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시행령 제정과 감독규정 정비, 인가·등록절차의 구체화, 발행·유통인프라 구축 등 여러 단계의 준비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질수록 발행과 유통플랫폼 역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 위에서 토큰증권 시장은 서두르지 않되 단단하게, 점진적으로 생명력을 키워나갈 것이다.

해외를 둘러보면 이미 여러 나라가 자산의 디지털화에 도전해왔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는 증권형 토큰에 대해 기존 증권법 체계 안에서 규율하거나 별도 전자증권·디지털자산 법제를 정비하며 시장에서 실험을 이어간다. 싱가포르와 일본 역시 제도권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형태로 점진적 안착을 시도해왔다. 아직 폭발적인 성장세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부동산 지분, 채권, 펀드 수익증권 등 다양한 자산이 토큰 형태로 발행되며 '기술은 도구고 신뢰는 제도에서 나온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국의 입법 역시 이러한 국제적 흐름 위에서 제도적 신뢰를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상품이 토큰증권으로 거래될 수 있을 것인가. 초기에는 부동산 수익권, 인프라사업 수익권, 미술품·음원 등 실물자산 기반 권리, 비상장 주식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 지분 등이 유력하다. 특히 소액분할과 유통의 효율성이라는 장점은 중소형 자산의 자금조달 구조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시장을 키우는 방향은 '희소한 자산의 조각판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투자자 보호와 정보공시, 적정 가치평가 체계를 갖춘 양질의 기초자산을 중심으로 신뢰를 축적해야 한다. 기존 증권시장과 시너지도 중요하다. 증권사·거래소·수탁기관이 참여해 발행과 유통을 분리하고 기존 계좌체계와 연동한다면 투자자는 익숙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상품을 접할 수 있다. 이는 전통금융과 블록체인 기술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연 토큰증권이 부동산, 주식에 이은 '제3의 투자수단'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단기간에 주류시장을 대체하긴 어렵겠지만 특정 자산군에서 유동성을 높이고 투자 접근성을 넓히는 보완적 시장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장기 프로젝트 자금조달이나 지역 기반 자산의 소액투자 모델에선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물론 우려도 존재한다. 좋은 자산은 내부에서 소화하고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떨어지는 자산만 토큰증권으로 내놓을 것이라는 의구심, 초기 유동성 부족과 가격왜곡, 블록체인 기술리스크, 투자자의 이해부족 등이 그것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엄격한 실사와 공시, 발행주체의 책임강화, 수탁·보관의 안정성 확보, 단계적 투자한도 설정 등이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기술혁신'보다 '신뢰혁신'이 앞서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토큰증권은 어렵게 태어난 옥동자다. 과도한 기대도, 섣부른 냉소도 경계해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단기차익이 아닌 장기신뢰를 목표로 협력한다면 토큰증권은 자본시장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따뜻한 금융인프라로 성장할 수 있다. 제도는 길을 열었고 이제 남은 과제는 시장 참여자들이 그 길을 성실하게 걷는 일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토큰증권은 한국 자본시장의 또 하나의 축으로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자리매김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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