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신약 개발에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국내 업계는 한껏 고무됐다. 'IT 강국' 경쟁력이 신약 개발에 더해지면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에 'AI 신약'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고, 자본시장 역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현재, 국산 AI 신약은 당초 기대와 달리 제한적 성과에 그치고 있다. 반면, 글로벌 무대에선 AI로 발굴한 후보물질이 인체 대상 임상에 진입하며 일부는 임상 2상까지 도달했다. 국내는 여전히 전임상이나 초기 임상 단계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술수출 역시 초기 후보물질 중심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격차는 기술력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국내 기업들도 후보물질 발굴 역량은 확보했지만, 이를 실제 신약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병원과 기관별로 데이터가 분절돼 있고 표준화도 부족했다. 결국 개발 속도와 임상 진입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업계가 국가적 차원의 데이터와 인프라 구축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다.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도 아직 초기 단계다. 'K-문샷' 프로젝트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데이터 활용과 인프라 측면에서 체감할 변화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데이터 생태계 구축이나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 중국 정부의 대규모 직접 투자와 비교하면 격차는 여전히 크다.
업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초기 기술수출에 의존하는 사업 모델은 글로벌 흐름과 괴리가 크다. 기존 신약 개발사들은 초기 임상 물질을 수출해 마련한 기반으로 직접 임상 진입을 노리는 체력을 갖추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AI 신약이 보다 초기 물질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실을 위한 기다림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AI 신약의 강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결국 성과로 증명하지 못하는 AI 신약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기대 서사'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해진 개별 기업의 취약한 재무구조는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다 무너져간 기존 신약 개발 잔혹사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