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통화 정책 전환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전방위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각보다 거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RB)가 금리 인하를 이어가면 한국은행도 뒤따를 것이란 기대가 뒤집어지는 순간이다. 이미 모든 지표들은 금리 인상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 시작은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이었다.아시아로 원유를 실어나르는 주요 물류 거점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국제 유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유가 폭등은 석유류 제품은 물론 비료, 포장재 등의 연쇄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모든 제품 가격이 오르는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전쟁은 즉시 석유류 제품 가격을 끌어 올렸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446달러를 기록, 작년 평균(3.171달러)보다 40.2% 급등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자 미국 연준도 더 버티지 못하고 금리 인상에 대한 깜빡이를 켜는 상황이다.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도 이미 현실화했다. 지난 3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6.1% 상승하며,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원화 약세와 유가 급등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이로 인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9개월만의 최대인 2.6% 상승했다. 석유류 제품가격이 무려 21.9% 급등한 영향이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3%대로도 상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격 안정을 압박고 있지만 집값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분양가 상승은 주변 집값까지 끌어 올려 집값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비사업의 평균 평당 공사비는 △2021년 480만원 △2022년 518만원 △2023년 606만원 △2024년 770만원 △2025년 808만원으로 매년 급등하고 있다. 서울 핵심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장의 공사비는 평당 1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최근 분양한 서울 노량진 재개발 지역의 84㎡아파트 분양가가 25억원에 달했다는 사실은 서울 집값이 손대기 쉽지 않은 영역에 도달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치솟는 분양가는 결국 주변의 기존 집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집값 불안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인이다. 1460~70원대에서 움직이는 고환율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을 기록하면서 성장률을 견인하는 점도 금리 인상을 가능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1.9%에서 2.7%로 큰폭으로 상향했다. JP모건체이스 역시 성장률 전망을 2.2%에서 3%로 대폭 높여 제시했다.
다만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이 부진한 K자형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반도체 호황이 나머지 제조업 부문의 부진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제 안정성을 뒤흔드는 근본적인 위험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필요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전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제언한 것처럼 반도체 이외 경기를 부양할 방안을 정부가 나서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온기가 경제 재구조화와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만큼 금리 인상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세심한 대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