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황지우, '서풍(西風) 앞에서' 전문)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의 주제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운다"쯤 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부채의식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가치 추구가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이념, 종교, 혁명에 헌신하고픈 욕망. 그것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렵다는 인류의 위대한 망집(妄執) 말이다.
그렇다. 전쟁은 짧고, 혁명은 길다. '미국의 침공에 의한 이란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최후의 승자는 이란, 그중에서도 혁명수비대(IRGC)일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관종' 같다. 그는 "하나의 문명이 완전히 사라질 것"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소총 들고 싸운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게 패배한 이유를 몰랐던 듯하다. 민족주의와 결합한 이념(베트콩)과 종교(탈레반)는 강철비로 때려맞아도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혁명수비대는 종교와 혁명의 수호자로서 스스로 궁극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트럼프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를 잘못 건드린 것이다.
실로 이란은 순교의 서사 위에 세워진 나라다. 이란에는 공휴일이 많은데, 상당수가 시아파 성인들의 순교일이다. 국가 전체가 일년 내내 제사를 지내는 종가집 같다. 마을 어귀와 골목 입구엔 얼굴사진들이 붙어 있다. 범죄자 수배 전단인 줄 알았다. 이라크의 침공 때 지뢰밭으로 돌진했다던 10대 소년병을 포함한 순교자들이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순교자들의 집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아슈라(시아파 이슬람의 원조인 후세인 사망 애도일) 땐 끝없이 검은 행렬이 이어진다. 남성들은 웃통을 벗은 채 쇠사슬로 자신의 등을 때린다. 초등학교 남학생들도 종교 선생님의 구호에 맞춰 자기 가슴을 치거나 등을 때리며 운다. 아파서가 아니라 슬퍼서 운다. 그것은 종교행사가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국민적 제의다.
행진 후 광장에 모여 순교극을 본다. 서기 680년 시아파의 원형 신화인 카르발라 전투를 재현하는 연극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 후세인은 왕권을 지닌 수니파에게 학살당한다. 혈통 승계 원칙을 고수한 시아파는 그 죽음을 패배로 보지 않고 순교로 받아들였다. 살아남는 것보다 올바르게 죽는 것이 더 위대하다는 세계관이다.
이란이 순교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2012년 9월말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흐마디네자드(1956~ ) 때문이었다. 그는 제67차 유엔총회에서 96분간 연설했다. 기도로 시작해서 카르발라 순교 역사, 반제국주의, 메시아주의를 설파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물질주의, 탐욕, 도덕적 타락이 만연한 말세다. 말세의 '대마왕'은 미국이다. 곧 메시아가 나타나 악을 쓸어버리고 천년왕국을 열어주실 것이다! 그러니 회개하라!
각국 정상들이 10~15분 연설하고 내려오는 자리에서 그는 1시간 36분간 설교했다. 진심으로 인류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구나! 불신자(不信者) 이방인이 보기엔 그게 다 '혁명 지옥'을 만드는 일인데, 그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구나! 3년 6개월간의 이란 생활에서 얻은 결론은 '천국은 하늘에 있어야지, 지상에 세운 천국은 지옥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강력한 빌런이 등장할수록 서사는 강화된다. 이번 전쟁으로 이란의 순교 서사는 완성도를 높이게 됐다. 이란에서 불멸의 가치를 독점하고 있는 혁명수비대가 무너지기 전까지 이란 체제는 전복되기 어렵다고 본다. 혁명수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 이란 국민들은 얼마나 무가치한 피를 흘리며 죽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