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삼성바이오 노사, 지금은 함께 달릴때다

임동욱 바이오부장
2026.05.21 05:25

"앞으로 10년 안에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모든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2010년 3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 복귀를 선언하며 한 말이다. 그는 "앞만 보고 가자"고 했다.

당시 삼성은 절박함을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같은 해 5월 바이오제약을 포함한 '5대 신수종 산업'을 발표하고 미래 먹거리 확보에 시동을 걸었다.

혁신은 계속됐다. 현재 삼성을 이끄는 이재용 회장은 부회장이던 2018년 바이오, AI(인공지능), 5세대 (5G) 통신, 전장 부품을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제시하고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특히 재계는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운다는 삼성의 전략에 주목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에 첫 삽을 뜬 지 불과 10년 만에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 생산캐파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그러나 앞으로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더욱 빠르게 달려야 한다. 시장 분석기관 '바이오플랜 어소시에이츠'가 집계한 '톱 1000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설 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10위권 밖이던 일본 후지필름이 단숨에 세계 3위로 뛰어올랐다. 이 회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덴마크 바이오의약품 CDMO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후지필름은 2019년 덴마크 힐레뢰드에 위치한 바이오젠의 생산시설을 8억9000만달러(약 1조3336억원)에 인수했고, 추가 증설을 위해 1000억엔(약 9435억원)을 투자했다.

2022년엔 10위권에 없었던 중국 CL바이오로직스의 선전 공장은 이미 세계 2위를 굳혔다. 한·중·일이 1·2·3위를 나눠 가진 구도지만, 추격 속도가 심상치 않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내부 사정이다. 연간 최대 수주 규모 기록을 갱신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 들어 아직 주목할만한 수주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노사갈등과 파업이 빚은 불확실성이 수주 영업 전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결과다.

글로벌 제약사가 CDMO 파트너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안정성'이다. 납기가 흔들리면 신약 출시 일정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기술력과 캐파가 아무리 뛰어나도, 노사 리스크 때문에 갑자기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다면 선뜻 대규모 위탁 생산을 맡길 수 있을까. 수주 공백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 내에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일궈낼 후보로 꼽힌다. 2022년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최초로 연매출 3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삼성의 '초격차 경영'이 작동하기 위해선 더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일본 후지필름은 현재 40만 리터 캐파를 2028년까지 총 75만 리터 이상으로 확장할 계획이고, 중국 기업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속도를 내고 있다. 16년 전 삼성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며 앞만 보고 뛰어든 시장에서, 경쟁자들이 그 말을 자신의 구호로 삼아 달릴 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멈춰섰다. 이달 1~5일에는 2800여명이 전면 파업에 돌입했고, 이 기간에만 15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현재 노조는 연장·휴일 근무를 거부하는 형태로 준법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노사 모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각자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경쟁자들은 빠르게 간격을 좁힌다. 노사가 한발씩 양보하고 손을 맞잡고 뛰어야 할 때다.

1위 자리는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데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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