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은 코스피의 이례적 랠리에 힘입어 올해 1월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 10위에 진입했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출범 이후 70년 만에 달성한 역사적 쾌거다. 지난달엔 독일, 대만, 영국, 캐나다 등을 제치고 6위까지 올라섰다. 미국, 중국, 일본, 홍콩, 인도가 1~5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나란히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서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규모가 곧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가총액 세계 6위라는 외형 뒤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가 숨어 있다. 지주회사가 있고, 그 아래 중간지주회사가 있으며, 다시 그 아래 사업 자회사가 층층이 상장돼 있는 것이다. 중간지주회사라는 제도는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정교하게 유지하기 위해 설계된 구조물이다.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 소수주주의 이익을 갉아먹는 메커니즘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간지주회사의 핵심은 레버리지(Leverage)다. 총수 일가는 최상위 지주회사의 지분 20~30%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중간지주회사를 거쳐 손자회사, 증손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영 의사결정을 좌우한다. 예컨대 총수가 A지주회사 지분 30%를 갖고, A지주가 B중간지주 51%를 갖고, B중간지주가 C사업회사 51%를 가지면, 총수의 실질 지분율은 C에 대해 7.8%에 불과하지만 지배력은 100%에 가깝다.
문제는 이 피라미드 구조에서 이익의 귀속과 손실의 귀속이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익은 배당·로열티·브랜드 수수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위로 올라가며 총수 일가에게 집중된다. 반면 자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소수주주의 돈으로 이를 메운다. 유상증자가 단골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소수주주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었던 '쪼개기 상장(물적분할 후 중복상장)'도 같은 맥락이다. 소수주주는 기업이 잘될 때는 이익을 나눠 갖지 못하고, 어려울 때는 자본을 대야 하는 구조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중간지주회사의 민낯이다.
SK그룹의 SK㈜-SK스퀘어-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3단 구조가 대표적이다. 5월 29일 기준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은 1630조 원이 넘는다. 그러나 하이닉스 지분 20.1%를 보유하고 있는 SK스퀘어의 시가총액은 163조 원에 불과하다. 지분 가치 328조 원보다 50% 이상 낮은 수준이다. 또한 스퀘어 지분 30%를 갖고 있는 SK㈜ 시가총액은 48조 원으로 스퀘어 지분 가치 수준에 불과하다. SK㈜가 보유한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비상장) 등의 지분 가치를 반영하면, SK㈜의 전체 순자산가치(NAV)는 최소 130조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결국 SK는 약 60% ~ 65% 할인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하이닉스 이외에도 SK플래닛(지분율 98.7%) 등 여러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SK스퀘어도 하이닉스 지분 가치 하나만으로도 50% 할인되어 주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대기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중간지주회사를 만들었거나, 그러한 역할을 하는 회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간지주회사 구조가 초래하는 가장 직접적인 시장 피해는 '대규모 기업집단 할인(Conglomerate Discount)'의 중층화다. '지주사 디스카운트(Holding Company Discount)'가 층층이 쌓이면서 최상위 지주회사의 가치 훼손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지주사 디스카운트는 주식시장에서 지주회사의 시가총액이 그 회사가 보유한 자회사들의 지분 가치를 합산한 것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 현상으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모회사(지주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복상장'으로 인해 시장에서 100% 인정된 자회사의 기업 가치를 모기업에서 지분율만큼 다시 계산되어 사실상 기업 가치가 이중으로 산정되므로, 시장에서의 가치 할인은 필연적 결과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의 시가총액과 보유한 지분 가치를 비교해 보면, 시장에서 삼성물산이 얼마나 할인되어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삼성물산 시가총액은 65조 원이다. 물산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삼성전자(5.01%) 87조 원, 삼성생명(19.34%) 14조 원, 삼성바이오로직스(43.06%) 27조 원으로 합하면 128조 원이다. 결국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건설·상사 등 자체 사업 가치는 전혀 반영이 되지 못한 채, 보유 지분 가치의 5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본시장은 단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이 복합 기업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는다는 것을 오래전에 입증했다. 투자자는 자신이 원하는 섹터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데 굳이 무관한 사업들을 한데 묶은 복합 기업에 프리미엄을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간지주회사 문제를 바라보는 글로벌 시각은 냉혹하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한국식 중간지주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시장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 기관투자자들의 행동주의가 강화되면서 불필요한 복합 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분할(spin-off)과 단순화를 강요받았다. GE가 100년 역사의 복합기업 구조를 해체하고 GE헬스케어, GE버노바, GE에어로스페이스로 분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월스트리트는 단순하고 투명한 구조에 프리미엄을 주고, 복잡한 피라미드에는 가차 없이 할인을 적용한다.
일본의 사례는 더욱 교훈적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계열사 간 교차출자와 복잡한 지배구조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도쿄증권거래소(TSE)가 주도한 지배구조 개혁과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이 맞물리면서 일본 기업들은 앞다퉈 계열사 정리와 구조 단순화에 나섰다. TSE는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미만 기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했고, 소니·히타치 등은 비핵심 자회사를 대거 매각하거나 상장폐지했다. 그 결과 니케이 지수는 2024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국의 경우 상장 자회사에 대한 지배주주의 관계자 거래(Related Party Transaction)를 '독립 주주총회' 결의 사항으로 규정하는 등 소수주주 보호를 법제화했다. 독립 주주총회는 자본시장과 기업지배구조 개혁 논의에서 핵심 화두로 떠오른 '소수주주 다수결(MoM, Majority of Minority)' 제도를 의미한다. 경영권이나 지배력을 가진 지배주주(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를 의사결정에서 제외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주주(일반·소액주주)들만 참여하여 안건을 결정하는 주주총회 표결 방식'이다. 한국의 소수주주가 중간지주회사 구조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선진국에서는 법적으로 차단돼 있는 것이다.
중간지주회사를 옹호하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사업 영역별 전문 경영이 가능하다. 둘째, 해당 부문에 특화된 외부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다. 셋째, 최상위 지주회사의 부담을 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주장은 모두 현실의 벽 앞에서 허물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이미 이 구조에 프리미엄 대신 페널티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간지주회사의 존재 이유는 경영 효율이나 주주 가치가 아닌, 지배주주의 편익에 있다. 지분율보다 훨씬 큰 의결권 행사, 내부 자금 흐름에 대한 통제권, 위기 시 소수주주를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능력 등 모든 것이 중간지주 피라미드가 제공하는 핵심 기능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관점에서, 소수주주의 관점에서, 그리고 한국 경제의 장기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명백한 해악이다.
시장은 이미 이 기형적인 구조에 '할인 딱지'를 붙였다. 우리가 진정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소수주주의 부를 흡수하며 서 있는 견고한 피라미드를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장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으며, 변화하지 않는 기업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