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은 흔히 '걸어 다니는 콜센터'라 불린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주민을 만나고 민원을 듣고 풀어내는 일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해서다. 밤낮없이 울리는 전화와 메시지는 지방의원에게 맡겨진 '소명'(Calling)을 거듭 일깨운다.
얼마 전에도 양재천 인근 주민과 상인들로부터 민원 메시지를 받았다. 빗물펌프장 지하화 문제로 시청과 구청을 오가며 호소했지만, 번번이 벽에 가로막혔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기관을 거친 사안이 서울시의회로 향한 이유는 메시지 마지막 문장에 담겨 있었다. 그들이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서울시의회에 연락해 보셨나요. 최호정 의원에게 말씀해 보시면 길이 보일 겁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2년 전 제11대 서울시의회 의장에 취임하며 품었던 다짐이 다시 또렷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35년이 지났지만, 지방의회는 여전히 시민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다. 지난해 실시된 '지방의회 대국민 인식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4명은 지방의회의 역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지방의원 관련 소식을 접한 적 없다는 응답도 64.5%에 달했다.
지방의회의 역할이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질수록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희미해진 존재감은 다시 무용론을 부른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했다. 누군가는 바꿔야 했고, 할 수 있다면 내가 바꾸고 싶었다. 낯선 물건을 마주하면 먼저 사용설명서를 펼쳐보듯, 시민이 지방의회를 더 가깝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 사용설명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의장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현장으로 향했다. 서울시의회의 사용설명서는 책상 위가 아니라 시민의 삶 한가운데서 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민이 어려울 때 언제든 호출할 수 있고, 삶의 거리에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의회의 쓸모를 한 장 한 장 새기고 싶었다.
그 결과 전국 광역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현장 민원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통로를 만든 것이다.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결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뒤로 밀려났던 문제들에도 정면으로 빛을 비췄다. 이런 노력은 경력단절로 일터를 떠나야 했던 가사·돌봄노동 시민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경력으로 다시 적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소방공무원의 처우를 현실에 맞게 보완했고, 생활 속 안전 문제를 다시 정책의 중심에 세웠다. 이제 서울시의회의 사용설명서에는 분명한 문장이 하나 새겨졌다.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시민의 바람이 마지막으로 닿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지방의회라는 문장이다.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를 써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제11대 서울시의회의 마지막 회기를 준비하며 법정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마침표도 현장에서 찍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방의원이 선 자리가 곧 지방의회가 설 자리다. 제도에 안주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현장에서 시민의 삶을 책임질 때, 서울시의회의 사용설명서는 비로소 대한민국 지방의회의 표준에 가까워질 것이다. 시민의 호출이 이어지는 한 우리의 현장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서울시의회가 남길 가장 단단한 마침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