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주택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주비·중도금용 집단대출을 가계부채 총량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대출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정비사업 조합원과 수분양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한 것은 틀림없지만 국가의 정책이 수립되고 변경되는 방식을 지켜보는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번 조치는 지난 23일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민원인의 발언을 수용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이 대통령은 2년 전 분양을 받았지만 최근 잔금대출이 막혀 입주에 어려움을 겪는 사연을 듣고 "정책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렇게 만들면 사실은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토론회 현장에서 규제 완화를 끌어낸 여성 참석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실수요자를 구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제 완화 과정은 역설적으로 우리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계부채 총량규제는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등 당국이 데이터에 기반해 정교하게 설계했어야 할 정책이다. 하지만 대출 총량에 투기 레버리지와 내 집 마련을 위한 실수요 대출이 구별 없이 취급됐고, 금융기관들은 가계대출 총량을 맞추기 위해 잇따라 집단대출 취급을 줄였다. 졸지에 이주비 지급을 못하고 중도금을 연체할 위기에 놓인 주택 실수요자들의 피해 호소가 이어졌지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즉석 민원 제기와 이에 수긍한 대통령의 한마디로 단 며칠 만에 뒤집혔다. 정부는 자신들이 내놓은 규제가 얼마나 허술하게 설계됐는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정책은 실험이 아니다. 도입 전 현장의 특성과 예상되는 부작용을 면밀히 살피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야 예외를 최소화할 수 있다. 촘촘한 예측 없이 획일적으로 규제의 칼을 휘두르다가 현장의 비명이 커지면 그제야 예외를 인정해 주는 '땜질식 처방'은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시장의 혼란만 키운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뒤집히는 정책이라면 국민은 '원칙'보다 '예외'에 더 기대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중 삼중의 규제가 실수요자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고 규제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