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50만위안(약 1억원)급 대형 SUV 수준의 스마트 주행 기술을 15만위안(약 3000만원)급 컴팩트 SUV에 적용했습니다"
지난 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샤오펑의 신차 '모나 L03' 발표회장. 샤오펑의 허샤오펑 회장은 "10만~20만위안대 컴팩트 SUV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모나 L03에는 목적지 입력 없이도 AI가 주변 도로 상황을 판단해 알아서 주행하는 기능이 적용됐다. 운전자가 의식을 잃으면 안전한 위치를 찾아 이동한 뒤 구조요청을 하는 기능도 탑재됐다. 이는 샤오펑이 자체 개발한 AI 칩의 적용을 통해 구현됐다. 허 회장은 "듀얼 튜링 칩으로 1500TOPS(초당 1500조 번의 연산) 수준의 AI 연산능력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업계와 언론에선 '스마트 주행 기술의 대중화'를 뜻하는 '지자핑취앤(智駕平權)'이 본격화됐단 평가가 나왔다. 포문을 연 것은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BYD다. 지난해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을 10만위안을 밑도는 보급형 모델에도 적용했다. 프리미엄 전기차 업체 니오는 차량과 보행자의 다음 행동까지 예측해 주행 경로를 결정하는 소프트웨어 최신 버전을 70만명 이상에게 배포했다.
'지자핑취앤'은 극한의 경쟁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가격경쟁 탓에 중국 자동차 업계 영업이익률은 5년 최저 수준인 3.4%까지 떨어졌다. 시장 불문율이던 가격 경쟁만으론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단 지적이 나왔고 보급형 가격대에도 프리미엄에 준하는 기술을 얹어야 살아남는다는게 새 불문율이 됐다.
'지자핑취앤'은 지난 4월 전기차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 번째 중국 전략형 모델 '아이오닉V'을 공개하며 중국시장 재도약의 출사표를 던진 현대차(401,000원 ▼31,000 -7.18%)가 넘어야 할 산이다. 아이오닉 V엔 퀄컴 스냅드래곤 칩 기반의 AI 비서가 탑재됐다.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와 AI 기업 바이트댄스 등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소비자 맞춤형 기술을 적용한다는 게 현대차의 구상이다. 아직 구체적 스마트 주행 기술 사양과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아이오닉 V는 중형급 크로스오버로 샤오펑의 모나 L03보다 한 체급 위다. 가격은 모나 L03보다 위로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승차감과 안전성을 앞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초당 1500조번 연산능력을 갖춘 칩이 탑재된 컴팩트 SUV를 경험한 소비자들을 붙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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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면 소프트웨어 개발과 업데이트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중국 기업들은 신차를 출시한 뒤에도 업데이트를 통해 주행보조 기능과 AI 서비스를 수개월 단위로 개선한다.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중국 현지 조직에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 현지 도로 데이터와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반영해 기능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동시에 소비자에게 '퀄컴과 모멘타의 기술이 들어간 현대차'가 아니라 '현대차여서 더 안전하고 완성도가 높은 스마트카'란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자체 AI 칩과 소프트웨어를 앞세운 중국 브랜드들과 비교하면 현대차만의 기술 차별성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축적한 조향·제동 기술을 통해 안정성과 승차감, 긴급 상황 대응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V를 시작으로 향후 5년간 중국에서 20개 신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식 AI 속도전에 현대차의 완성도를 결합한 스마트 전기차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현대차가 내세운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 세계로'라는 전략이 통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