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고교 학습지도요령까지 바꿔가며 역사 왜곡을 노골화하고 있죠. 중국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동북공정을 밀어붙이고 있어요.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를 놓고 소모적인 이념논쟁만 되풀이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나이·혈액형·성격 등을 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운동가를 안중근이 아닌 안창호로 알고 있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역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고교생들이 2020년부터 배울 역사 검정교과서 교육과정·집필기준 시안 최종보고서가 공개된 뒤 최근 만났던 일선 교사들의 말이다. 교사들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역사교육이 지식전달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학생들의 흥미 유발은커녕 학습부담은 오히려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든 것이 입시로 통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국사·한국사가 또 암기과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대 흐름은 개연성을 갖고 진행되지만, 주입식 암기교육은 시험을 치르고 나면 그뿐이다.
학계를 넘어 정치권에서 역사교과서에 대한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의 관심사는 기성세대들이 논쟁하는 좌편향이나 우편향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어떤 문제가 나오느냐”라고 지적했다.
문득 과거 학창시절의 이미지가 오버랩 됐다. 1970년대생은 ‘문교부’ 국정교과서 세대다. 서글프지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교과서와 녹색 칠판 판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쓴 노트를 그냥 달달 외웠다. 역대 왕들의 묘호와 주요 사건, 정책이나 제도 등.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미국 현대사의 양심’으로 불린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 교수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역사연구는 곧 무엇이 중요한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라며 “무엇이 중요한지는 실제로 현재 우리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념편향 논란보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서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어떤 교훈을 창출해 낼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10일 현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돌을 맞는다. 대통령 지지율은 8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유독 교육 분야만큼은 ‘긍정 평가’가 30%에 그쳐 최하위에 머물렀다. 교육에 대한 비전·철학을 제시하기는커녕 리더십 부재 속에 주요정책을 놓고 혼란을 증폭시킨 탓이 크다. 역사를 통해 현 정부도 자신의 정체성·정통성을 드러내고 싶겠지만 개입을 자제하는 게 좋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이 거듭될수록 지지율을 떠나 사회 분열은 더 가속화 할 위험성이 있어서다. 미래세대인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여겨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