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이 20명인데 5~6명은 반도체학과를 목표로 해요. 이런 학생들은 대기업 계약학과는 무조건 써요." 서울의 과학고에서 근무하는 A교사는 지난해 하반기 조기졸업을 앞둔 성적 상위권 학생 여러 명에게 반도체학과 추천서를 써줬다. A교사는 "공대 진학을 생각하는 학생 중엔 반도체 분야 희망자가 가장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연봉이 의사 수준에 근접하면서 '의대 N수반'으로 불리던 과학고에서도 반도체 열풍이 분다.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입사가 가능한 반도체 분야의 대기업 계약학과를 중심으로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5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연계된 반도체 계약학과 6곳의 모집 인원은 250명으로, 5516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22.1대1을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모집 인원은 13명, 지원자는 231명 늘었다.
대기업 계약학과는 졸업 후 특정 대기업 채용이 연계된 학과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협약을 맺고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은 성균관대·포항공대·연세대·서강대·한양대·고려대 등이다.
특히 SK하이닉스와 연계된 반도체학과의 선호도가 두드러졌다. 2026학년도 SK하이닉스 계약 반도체학과 3곳의 수시 모집 인원은 80명으로, 2478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31대1에 달했다. 모집 인원이 전년보다 8명 늘었지만 지원자가 451명 증가하면서 경쟁률은 2025학년도(28.2대1) 보다 외려 상승했다.
정시에서도 열기는 이어졌다. 2026학년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계약한 반도체학과 8곳의 정시 경쟁률은 평균 14.7대1로, 전년도(13.7대1)보다 높아졌다. 정시 모집 인원이 1명 늘어나는 동안 지원자는 113명 증가했다.
반도체학과로의 쏠림은 의과대학 지원 열기가 다소 주춤한 흐름과 대비된다. 2026학년도 의·약학계열 수시 지원자는 11만2364명으로 최근 5년간 가장 적었고 의대 정시 지원자 역시 7125명으로 전년 대비 32.3% 줄며 5년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학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입시 성적 역시 의대에 근접한 수준으로 상승했다.
대입정보포털 '어디가'에 따르면 2025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최종 등록자 상위 50%의 평균 대학환산점수는 670.65점으로, 일반 자연계 학과인 자연과학계열 평균(655.21점)을 크게 웃돌았다. 약학과(679.56점)와의 격차는 약 9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역시 의예과를 제외하고 정시 모집 전 학과 가운데 가장 높은 평균 점수를 기록했다.
교육업계는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과 처우 상승이 입시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반도체 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과 함께 높은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반도체 전공이 의대에 버금가는 유망 진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최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이른바 '묻지마 의대' 지원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며 "대기업의 실적 개선과 주가 흐름, 고액 성과급 등이 반도체 전공의 매력을 키우면서 최근에는 대기업 계약학과와 반도체학과가 의대와 견줄 만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