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패배했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도 ‘루저’라 할 만하다. 여소야대 가능성을 점친 곳이 드물다. 새누리당 의석수를 기준으로 하면 대체로 30석 이상 전망이 틀렸다. 유선전화 위주 조사의 한계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실 공표 금지 기간 중 여론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동반 상승, 특히 정당 투표에서 국민의당의 대약진, 새누리당 급락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각 당의 자체 조사나 지상파 방송사의 출구조사 발표 자료를 위한 여론조사 모두 같은 방향이었지만 유권자들에겐 이런 정보가 전달되지 못했다. 현행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은 너무 길다. 대선 이전엔 손을 봐야 한다. 아니면 내년 대선 기간에도 각종 루머나 역공작이 횡행할 것이다.
여론조사에 한해선 6년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공표 금지 전 여론조사 격차가 10~20%P나 차이가 나던 강원지사, 충남지사 선거가 뚜껑을 열어보니 다 뒤집혔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엔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후보가 결국 승리했지만 0.6%P차이의 초박빙 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의 교훈으로 등장한 것이 이젠 보편화된 RDD(Random Digit Dialing: 임의 번호 걸기)방식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지금은 유물이나 다름없는 KT 유선 전화번호부를 기반으로 하는 여론조사가 실시됐었다. 전화가입자 명의로 되어있는 전화번호부에선 청년층을 추출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 됐고 그 대안으로 RDD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 통해 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 각 당의 경선 등이 치러졌지만 드디어 RDD방식도 한계를 노출하고 말았다.
필자는 선거 기간 중 몇몇 선거구에 대해선 언론사, 후보 자체, 정당 자체 조사 통계표 원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봤다. 그런데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에 당혹한 적도 많았다.
서울의 한 야당 당선자의 경우 특정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30대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로 나온 적도 있었다.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되는 결과였다.
이에 대해 대형여론조사 회사에서 기업 마케팅 조사를 담당하는 한 임원은 “유선전화 조사로 제일 잡히지 않는 것이 30대”라면서 “차라리 20대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선전화로 잡히는데 독립해서 살거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30대는 전혀 안 잡힌다. 마케팅 영역에선 유선전화로 30대를 잡는 것은 포기한지 오래”라고 말했다.
정치 관련 한 여론조사 회사 대표는 “평일 유선전화 여론조사에 응하는 20, 30대는 실업 상태거나 자영업에 종사 비중이 높은데 이같은 경우 정치성향이 보수적인 편”이라며 “게다가 통상 총선 지역구 여론조사는 500샘플을 채우는데 급급한데 30대에 대한 보정율이 제일 높다”고 부연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휴대폰 패널그룹 조사로 보완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리스크가 있다. 유선전화 조사의 최소 패널수를 현재 500명에서 700명 이상으로 올리고 이틀 이상 진행해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최근 화두가 된 안심번호 방식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
현행 여론조사의 한계는 이것만이 아니다. RDD방식은 유선전화 가입 당시 지역의 국번에 기반한다. 전화 이전 상황이 업데이트되지 않는 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10년 전 서울 서대문구에서 유선 전화에 가입한 사람이 현재 강서구에 살 경우 그에게 걸려오는 여론조사 전화는 서대문-마포-은평 권역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에게도 여론조사 통계표 해석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급적 같은 여론조사 기관을 통해 몇 번은 해봐야 유의미하게 ‘추이’를 판별해낼 수 있다. 연령대별 지지율, 지역구내 강세 지역과 약세 지역 판별, 소속 정당 지지율, 대통령 지지율, 적극투표층 내 지지율의 변화를 보면 판이 읽히긴 읽힌다. 그런데 유권자들한테도 이걸 읽어내라고?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