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의 풀어쓰기]'리영길 처형설'과 국정원 대북정보 유통의 문제점

박소연 기자
2016.05.15 09:59

[the300]보도자료·정보위 보고·브리핑 등 통해 원하는 시점에 공개…정보 검증·확인 어려워 기정사실화

[편집자주] 외교안보 부처와 국회를 동시에 출입하는 기자의 취재기. 유독 비밀도, 어려운 용어도 많은 이곳 이야기를 쉽게 풀어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북한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발표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들의 모습. 윗줄 왼쪽부터 리용호, 임철웅, 조연준, 리병철, 노광철, 리영길, 김수일, 김능오, 박태성. (노동신문) /사진=뉴스1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월10일 정오 무렵, '개성공단 관련 정부조치에 대한 엠바고 브리핑'이 열린다는 문자메시지가 통일부 기자단에게 전달됐다. 브리핑 1시간30여분 전에 알린 급박한 공지. '개성공단 폐쇄'란 중대 소식은 그렇게 갑자기 알려졌고 기자들은 엠바고 해제 시점인 오후 5시까지 기사를 써내느라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

그런데 오후 3시40분쯤 통일부 기자단엔 또 다른 보도자료가 왔다. '북 리영길 총참모장 2월 초 전격 숙청'이란 제목의 대북 소식통 자료였다.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중대 사안으로 대변인실도, 기자단도 정신없이 바쁜 때였다. 보통 큰 사건이 터지면 보도 일정을 겹치지 않게 조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온 언론사 편집국에 '비상'이 걸린 그날 하필 보도자료가 뿌려진 것이다.

보도자료엔 '종파' 및 '세도·비리'란 구체적인 혐의와 함께 "김정은이 측근으로 분류되는 북한의 핵심 간부들조차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란 설명까지 붙어있었다. 그로부터 3개월여 후인 지난 10일, 처형됐다던 리영길은 북한 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처형이 아니라 숙청이었다고 수정해야 할 것 같다"며 "숙청의 개념 중에 처형도 있고, 수용소에 들어가는 것도 있고, 계급 강등이나 은퇴도 있는데 그 중 하나였던 것이고 적당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복권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다 제 탓입니다"라고도 했다. 이 해프닝은 무엇을 말하는가.

많은 이들은 대북정보의 부정확성을 지적했다. '총선 없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정보전에서 이 같은 실책은 잘못된 대북 정책과 안보위험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우리 정보기관의 대외 신뢰도를 추락시킨다.

CNN과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은 최근 '처형된 줄 알았던 리영길이 살아 돌아왔다'는 제목으로 한국 정보기관의 오판을 대서특필했다. AP통신은 "리영길 관련 소식은 한국 정보기관의 또 다른 실책(blunder)"라며 "그들(한국 정보기관)은 그들의 라이벌(북한)의 상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종종 잘못된 정보를 획득하곤 했다"고 지적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워싱턴 포스트(WP)의 비평이다. WP는 지난 11일 '거듭된 실책은 국정원이 엉망이라는 증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같은 실수가 "북한의 폐쇄적인 특성, 정보를 확인하고 유포하는 방식, 그리고 정치적 행동을 일삼고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기보다는 체면 세우기에 급급하다는 비난을 받아온 국정원 요원들의 경향에서 기인한다"고 꼬집었다.

/사진=구글 검색화면 캡쳐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보오류 자체보다는 대북 정보의 불투명한 유통구조에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정보기관이) 무능한 것은 차후의 문제고 원래 첩보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확인이 될 때, 정보화될 때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라며 "첩보수준일 때 개성공단 중단 시점에 알렸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에서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등을 이용해 획득된 첩보를 한 단계 높여 정보 수준으로 언론에 유통하는 과정에서 오판이 있었다는 뜻이다. 리영길은 실제 이번 인사에서 서열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영철 등 야전 군인에 대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견제와 숙청은 현재진행형일 수 있다. 다만 이것을 성급히 '리영길 처형'이라고 단정해 유통시킨 데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으리란 것이 안팎의 시선이다.

국정원은 이번 사안과 관련, '리영길 처형설'을 통일부에 보고라인을 통해 전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북정보는 국정원의 종합 분석을 거쳐 청와대에 보고되는 것이 정설이다. 통일부가 단독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유통했을 가능성은 낮다.

현재 국내 대북정보는 국정원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언론이 이러한 정보를 검증하기란 매우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국정원이 유통하는 정보는 그것이 이번처럼 추후에 사실과 다르게 밝혀지지 않는 한 기정사실화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정원은 특정 정보를 노출하는 시기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보고는 국회 정보위나 당정협의를 통해 기사화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 11월부터 현재까지 국정원이 주도한 당정은 '긴급 안보대책 회의', '사이버테러 대책 긴급협의' 등 5차례에 이른다. 테러방지법과 북한 핵실험 등 이슈를 감안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 꼴은 기록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국정원의 보고는 주로 국정원 국장 출신 이철우 정보위 여당 간사의 브리핑을 통해 즉각 속보 처리됐다.

"北, 서울 모형 이용해 주요시설 파괴 훈련", "김정은, 대남테러 역량결집 지시" "北, 국가기간시설 타깃 테러 가능", "탈북민 독극물 공격 가능" 등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보고 내용이 국정원발로 기사화됐지만 이러한 정보의 출처나 정보수집 경위는 보안사항에 해당해 확인하기란 어렵다. 내용을 언뜻 봐도 첩보 수준에 불과한 정보를 무리하게 공개한다는 의심이 드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이버테러방지법 논의를 위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가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해 말부터 총선 전까지 국회 정보위도 유독 자주 열렸다. 정보위 전체회의는 여야 합의를 거쳐 개최되고 정족수를 채워야 하지만 최근 정보위는 야당 의원들의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여당 단독으로 간담회 형식으로 열린 적이 많았다는 게 특징이다. 이 경우 여당 소속 정보위원장과 정보위 간사의 브리핑 내용은 국정원발 정보로 유통됐다.

정보위 야당 관계자는 "국정원이 북한 관련해 얘기할 땐 자료를 준비해와서 읽는데 정보위가 국정원 스피커 역할을 하는 것을 피하고자 브리핑 할 때 자료를 복사해서 나눠주라고 할 때도 있다"며 "국정원이 보고하는 정보 수준도 38노스(미국의 북한정보사이트) 등에서 이미 나온 것을 자신들이 확인한 것처럼 가져오는 경우가 많고, 정보위를 열면 욕먹을 것 같은 사안은 편하게 당정협의나 당국자발로 오픈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4·13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달 8일(금요일) 오후 5시, 통일부가 갑자기 브리핑을 열고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의 집단탈북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 역시 다양한 추측을 낳았다. 이러한 정부 보도자료, 국회 보고,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적은 기자들도 반성해야 하지만, 기자 개인이 사실여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 '킬'(기사화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대북정보의 유통은 앞으로도 국정원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이처럼 국내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데 반해 대외적으로는 망신살이 뻗친 적이 많다. 지난해 4월29일 국정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러시아 방문할 것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가 하루만에 러시아측에서 공식 부인했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은 이틀이 지나고 북한 조선중앙TV의 공식 발표가 있은 후에야 인지했다. 지난 4월엔 북한의 4차 핵실험 동향을 인지하지 못해 질타를 받았다.

국정원의 대북정보 라인은 이명박 정부에서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측근인 비전문가 원세훈 국정원장을 기용하면서 인력과 조직이 대폭 축소됐다. 이후 국정원 쇄신 목소리가 높아지자 후임 국정원장들은 국내파트를 줄이고 대북정보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국회 정보위에서조차 실제 국내정보와 대북정보에 쓰인 예산 등을 감시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은 9.11 테러 사태를 통해 정보실패를 겪은 후 중앙정보국(CIA)은 해외정보수집만을 담당케 하고 정보취합분석을 전담하는 독립기관 ODNI(국가정보국장실)을 신설했다. 정보수집 기관은 CIA와 연방수사국(FBI), 국가안전보장국(NSA) 등 17개 기관으로 다원화했다. 국정원이 대북정보 획득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기능을 특화하고 외부 감시와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