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통합'을 표방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까지 가게 된 배경에는 재임 후 오히려 '불통과 독선'의 국정운영을 고집한 것이 원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비선라인 의혹과 거듭된 인사실패는 이같은 통치 스타일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이다. 그동안 7시간에 침묵하던 청와대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나서야 "꾸준히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박 대통령의 그날 행적은 명확하지 않다. 그 사이 '연애' '굿판' '성형' '주사' '머리' 등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긴밀한 소통관계에 있어야 할 내각과도 '일방적 통치' 스타일을 고수했다. 대부분의 장관들은 박 대통령과 독대한 경우가 드물었고 국무회의 등에서 쌍방간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에 따르면 가장 가까이서 국정을 논의해야 할 비서실장조차도 1주일에 한 번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입에서 소통에 인색한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비서관 등을 향해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며 대면보고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소통을 통한 합의보단 독단적 결정을 선호하면서 그동안 강조해온 통합 대신 갈등만 양산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를 시작으로 세월호 진상조사, 동남권 신공항, 사드 배치, 한일 위안부 합의, 공무원연금,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예산 등 갈등이 꼬리를 물었다.
박 대통령 탄핵 사태는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를 국정에 개입시켜 국가를 사유화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식라인과 소통을 하지 않는 대신 최순실이라는 사인과 국정을 의논한 것이다. 최순실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가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박근혜정부에 비선실세가 있다는 시그널은 여러 차례 나왔다. 정윤회 문건이 보도된 2014년은 이미 청와대가 비선실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정치권과 언론은 '십상시' '7인회' '만만회' '문고리 3인방' '8선녀' 등 박 대통령을 둘러싼 비공식 가신그룹이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나왔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3인방은 이미 검찰 수사를 받았고 정 전비서관은 구속되는 등 일부 의혹은 점차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측근들만 중용하다 보니 인사에서도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후보자는 번번이 낙마했고 중용한 인사들도 물의로 옷을 벗었다.
김용준, 문창극, 안대희, 이완구 등 총리후보자를 비롯해 윤창중 대변인,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등이 낙마하면서 박근혜정부는 '보수인사들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다.
원칙주의자나 직언을 할 수 있는 인사들은 스스로 찍어냈다.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한 채동욱 검찰총장은 혼외자 논란을 이유로, 유진룡 문화체육부 장관은 청와대 인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외출장 중 경질했다.
자신과 한 배를 탔던 인사 중 견해가 다르면 거리를 둔 것도 악수였다.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김종인 당시 대선캠프 국민행복위원장은 재벌개혁을 두고 이견이 일어 갈라섰다. 진 영 복지부 장관은 박근혜정부에서 기초연금정책으로 갈등을 겪다 물러났다. 김종인 위원장과 진 장관은 적진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유승민 원내대표나 김무성 당대표와도 갈등을 겪었지만 관계 개선보단 압박하는데만 몰두했다. 이들은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입맛에 맞는 인사만 등용하다 보니 '회전문 인사'나 '붙박이 인사'가 반복됐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김장수 주중대사 등은 박근혜정부 내내 중용됐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경우 '종신 총리'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