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착한 분노'의 공론장이 되면서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국민청원은 사실상 내용에 제한이 없어 온갖 청원이 등록되지만 특히 안전·인권·폭력처벌 관련 청원이 눈에 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집계 결과, 이런 분야 청원일수록 답변기준인 20만명 동의를 급속도로 돌파하는 등 여론을 이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불안과 분노가 이 현상의 밑바닥에 있다고 진단한다. 분노의 표현이 공격적 결과만 낳는 것이 아니다. 여론을 환기시켜 제도개선을 이끌어내는 순기능이다. 이른바 착한 분노다. 이와 함께 긍정·부정적 평가를 한몸에 받는 국민청원이 공익에 더욱 부합하려면 여론 왜곡 방지 등을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대표상품' 국민청원은 가동 1년4개월간 그야말로 폭발적 흥행을 일궜다. 26일 현재 34만7000건이 등록됐다. 답변대기중을 포함, 20만명 동의를 넘긴 게 68개에 이른다. 한 달 평균 4개꼴로 20만명의 동의를 받아낸 셈이다.
슬리핑차일드 체크(잠든아이확인법), 음주운전처벌강화(윤창호법), 외상센터 지원(이국종법)은 국민청원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 힘으로 실제 법이 개정됐거나 논의중이다. 국민청원의 결정적인 순기능이자 '청원 신드롬'의 배경이다.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중에도 국민청원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핵심은 국민의 불안과 분노다. 흉악범죄 피해, 억울한 사연에 '나만 분노한 게 아니었다'는 공감을 확인하면 이내 여론의 물결이 됐다. 청원 68개 가운데 동의자가 많은 순으로 1~14위가 특정사건이나 개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이다. 폭행 등 범죄 예방과 엄벌을 요구한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뒤섞여 있다.
청원자가 정하는 국민청원 분류상 인권·성평등이 68개중 20개로 가장 많다. 안전·환경 분야가 8개로 뒤를 이었다. '기타'나 '미래' 분류 중에도 청소년강력범죄 처벌, 인천 여중생 가해자 처벌, 조두순 감형반대 등 사실상 안전과 인권 분야가 적잖다.
특히 강서 PC방 살인사건 엄벌 청원은 유일하게 100만명 동의를 넘었고 역대최다인 120만명에 가깝게 호응했다. 흉악범죄를 심신미약으로 가볍게 처벌해선 안 된다는 분노의 결과다. 일부에서 조직된 힘의 특정 청원 밀어올리기도 의심하지만 조직력으로 한계가 있는 수준이다. '착한 분노'는 사회 전반에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무관용주의가 확산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작은 부패라도 엄벌할 것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국민청원은 끊임없이 개선 요구를 받는다. 최근 35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이수역 폭행사건 처벌 청원은 국민청원의 그림자를 뚜렷이 드러냈다는 평가다. 혐오성 발언이 사건의 발단이란 점도 뒤늦게 드러났다.
청원의 공개여부를 지금보다 꼼꼼히 따지는 식의 대책이 제기된다. 문턱을 높이는 게 부적절하다면 그와 동시에 답변 기준은 완화할 수도 있다. 착한 분노가 정당하다면, 이를 사회통합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떤 문제의 여론환기라는 순기능과 정치적 카타르시스가 있다"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청원도 있고 이런 방식이 맞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국민청원 운영을 담당하는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개선 방향에 대해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고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실명제 도입 등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는 부정적인 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