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여간해선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에서 보좌했던 참모들은 "화나도 잘 참는다"고 말한다. 원래 성격에다 인권변호사라는 직업 특성도 겹친 걸로 보인다.
그런 문 대통령이 북한을, 사실상 김정은-김여정 남매를 향해 상당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것도 두 차례다.
문 대통령은 17일 정오부터 약 2시간 외교안보 원로들과 만났다. 이때 "국민이 굉장히 실망하셨을 것",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닌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자세" 등을 언급한 걸로 전해졌다.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 이전에 추진된 오찬회동이다. 하지만 폭파 결과를 들고 대화를 나누게 됐다. 참석자들의 전언이지만 문 대통령의 반응을 알기에 충분한 말이다.
앞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도 사실상 문 대통령의 입장으로 여겨진다.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는 문 대통령의 6·15 메시지를 "혐오감" "구걸질" 등 격한 표현으로 맹비난했다.
윤 수석은 "문 대통령은 전쟁의 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의 남북관계를 후퇴시켜서는 안되며, 남과 북이 직면한 난제들을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나가자는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북측이) 이러한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이러한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을 우리로써는 더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며 "특히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례, 몰상식, 사리분별, 예의.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상대에게도 써본 적 없는 표현이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그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대남 비난이 그만큼 과격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결과를 떠나, 문 대통령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발자국과 땀으로 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8년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된 가운데 문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로 날아가 북미 회담 성사를 매듭짓고자 했다. 이를 위해 1박4일 방미를 결정했다.
'1박4일'은 한미 시차 때문에 생기는 상징적 표현이지만 그의 강행군을 뜻하는 말이 됐을 정도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귀국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 연기(취소)라는 초강수를 뒀다. 문 대통령은 5월26일, 판문점에서 깜짝 남북 정상회담을 하며 중재에 나섰다.
'셔틀 중재'는 지난해 하노이노딜 이후에도 이어졌다. 6월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회동과 북미 정상의 별도 회담이 성사됐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이 다시한번 손을 맞잡는 '판'을 깔아줬다.
앞서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선 공식회담 외 도보다리 대화 등으로 남북 정상간 공감대도 만들었다.
북한이 대북전단, 남북미 합의 이행 등에 불만이 있다는 건 당국도 인정한다. 그렇다 해도 남북이 여태 투입한 노력과 그동안의 진전마저 폄하해선 안 됐다는 시각이 여권에 있다.
대북특사로 평양을 다녀왔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북한도 정상국가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을 지켜달라"며 "그 선을 지키지 않으면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역사는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기록할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문 대통령의 반응이 실망이나 허탈감보다는 안타까움, 아쉬움에 가깝단 견해도 있다. 문 대통령은 원로 오찬에서 당장은 어렵겠지만 인내하면서 계기를 모색한다는 취지로도 말한 걸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