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타버린 '방패'… 22조 '비자발적 자사주'도 소각해야

최지은, 박종진 기자
2026.02.26 04:13

1차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2차 포이즌필 도입 등 무산
기업 요구 번번이 '외면'… 행동주의펀드 '공격' 본격화

상법 개정 타임라인 및 주요내용·재계 요구 사항/그래픽=이지혜

재계에서 자사주(자기주식)는 행동주의펀드 등 외부세력의 공격에 맞설 '마지막 방어선'으로 여겼다. 별다른 보완책 없이 1~3차 상법개정이 이뤄지며 우리 기업들의 방패는 사라지고 불확실성만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이어진 3차례에 걸친 상법개정 과정에서 기업들의 요구는 사실상 수용되지 않았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골자로 한 1차 개정 당시 재계는 배임죄 전면개편과 함께 경영판단원칙의 명문화, 이사의 면책근거 마련 등을 요구했다. 경영진의 법적 책임이 확대되는 만큼 합리적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사후적 민형사 책임을 제한하는 안전장치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보완입법 없이 지난해 7월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실시 등의 내용을 담은 2차 개정 당시에도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요청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오히려 '의무공개매수제' 입법을 추진한다. 의무공개매수제는 M&A(인수·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에게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각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다만 재계는 이로 인해 M&A 비용이 급증하고 성사 가능성이 있는 거래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행동주의펀드 등의 공격이 이뤄질 경우 보유 중인 자사주를 우호세력(백기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했다. 하지만 이번 3차 개정에 따라 신규취득 자사주의 경우 1년, 기존 보유 자사주도 1년6개월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 특히 기업들이 요구한 '특정목적 자사주'(비자발적 자사주)에 대한 소각예외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자발적 자사주는 합병과정 등에서 발생한 자사주를 의미한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3차 개정안 통과 이후 코스피 시장에서는 20조83억원, 코스닥 시장에서도 1조7760억원 규모의 특정목적 자사주가 소각대상이 된다. 재계는 특정목적 자사주까지 일률적으로 소각하면 자본금 감소 등 재무구조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해 7월3일 1차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7개월 만에 3차 개정안까지 처리되면서 행동주의펀드의 움직임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영국계 행동주의펀드인 팰리서캐피탈은 다음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LG화학에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약 10%를 매각해 자사주 매입·소각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팰리서캐피탈은 LG화학 지분 1% 이상을 장기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행동주의펀드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KCC에 공개주주서한을 보내 삼성물산 주식의 유동화와 발행주식의 17.2%에 달하는 자사주 전량 소각을 촉구했다. 태광산업에 대해서는 소액주주가 보유한 유통주식 23만주를 매입해 상장폐지를 추진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행동주의펀드는 단기수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3차례 상법개정으로 경영권 방어수단이 약화한 만큼 이들의 공세가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한국 기업의 실질적 경영권 방어수단은 그간 자사주 외에는 거의 없었다"며 "한국형 지배구조에 부합하는 경영권 방어장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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