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 사용이 늘면서 전차의 필요성이 경시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저가 자폭 드론과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 전차를 파괴하는 장면은 큰 충격을 줬다. '무용론'까지 제기됐지만 전차는 역설적으로 지상전 승리를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전쟁 초기 러시아 전차 부대가 드론에 속절없이 당한 것은 전차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협동전술' 부재와 드론 방어 체계 부족 때문이다. 보병과 포병, 방공망의 지원 없는 전차는 표적에 불과하다. 하지만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점령지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여전히 강력한 화력과 기동성, 장갑을 갖춘 전차뿐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드론과 전차는 무인화 기술과 함께 상호 보완적 존재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래 지상전의 승패는 '누가 더 먼저 보고, 누가 더 영리하게 방어하느냐'에 달려 있다. 군사 강국들이 개발하고 하는 차세대 전차의 방향성도 이 부분에 맞춰져 있다. M1 에이브람스가 주력 전차인 미국은 차세대 M1A3를 개발 중이다. M1A3는 중량을 줄이고 디젤 중심에서 전기모터 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Type 99가 주력전차인 중국은 차세대 전차인 Type 103을 개발 중이다. 이 전차는 승무원 2명이 운용할 수 있고 무인 포탑을 탑재한다. 드론 대응 능력 강화에도 중점을 맞추고 있다. 독일의 레오파르트 2, 영국의 챌린저 2 등이 주력 전차인 유럽은 독일의 차세대 모델인 레오파르트 3으로 혁신을 꾀하고 있다. 레오파르트 3은 레이저 무기와 드론 통제 기능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Type 10이 주력 전차인 일본도 차세대 전차 개발을 진행 중이며, T-14 아르마타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경우 개량 모델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차세대 전차는 각국의 전장상황과 운용개념에 따라 개발 방향성에 차이가 있지만, 기동성을 높이고 적 드론에 대한 방호기능을 강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1대의 전투기가 다수의 무인전투기를 운용하듯 전차장이 직접 드론을 날려 정찰하고, 보이지 않는 곳의 적을 타격하는 '모함' 역할을 하는 전차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드론을 사냥하는 포식자 역할이 추가되는 것이다.
한국군의 주력 전차인 K2는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산이 진행 중인 전차다. 제작사인 현대로템은 2014년 본격 양산을 시작했고 이 시기 우리 군은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K2의 성능은 이미 수차례 입증된 바 있다. 이 전차의 진면목은 자체 방호 능력에 있다. 능동방호시스템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회피하는 유도교란형인 소프트킬(Soft-kill)과 직접 무기를 타격하는 대응파괴형인 하드킬(Hard-kill) 모두 소화할 수 있다.
차체 방어력을 높여 승무원의 생존력을 극대화한 수동방호체계도 K2 전차의 강점으로 꼽힌다. 2022년 노르웨이 현지에서 이뤄진 동계시험평가에서 기동력과 명중률, 디지털화된 전장관리체계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보여주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대로템은 2040년대를 염두에 둔 차세대 전차 K3의 연구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현대로템은 2023년 서울 ADEX 전시회를 통해 130mm 주포를 탑재한 차세대 전차 콘셉트를 공개한 바 있다. 소재 기술의 발달로 경량화된 세라믹 복합장갑을 탑재해 무게는 가벼워지면서도 방호 능력은 한층 강화된다. 승무원 공간을 집중 방어하는 캡슐형 승무원실도 있다.
특히 적군에 포착될 위험을 낮추는 스텔스 기술을 적용해 대전차미사일의 유도 신호를 교란할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 등 전동화 추진체계를 적용해 친환경 모빌리티 체계도 구축된다. 이를 통해 기동 간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고 대용량 전력 소요에 대비할 전망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자율주행 및 원격 운용도 가능할 예정이다.
K3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현대로템이 글로벌 3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라는 점이다. 단순한 전차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모그룹인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기술, 수소 에너지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수십 년간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개발로 축적한 배터리 기술, 고출력 모터 기술 등을 그대로 이식할 수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로봇 전문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이 적용될 때 K3는 융합의 결정체가 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세계 최고의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사족 보행 로봇 '스팟'을 보유하고 있다.
아틀라스와 스팟에서 갈고닦은 자율 이동, 환경 인식, 강화학습 기반 인공지능 제어 기술은 자율 기동과 전장 상황 판단에 직접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K2로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쌓은 현대로템에게 K3는 더 큰 도약의 발판이 된다. 2040년 K3가 전장에 나타날 때 세계 전차 시장의 지형이 달라지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