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재외동포에 최재형 선생…안중근 의사 지원한 '연해주의 난로'

정한결 기자
2026.05.15 13:42

[the300]

/사진제공=재외동포청

재외동포청이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를 돌보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고(故) 최재형 선생을 5월의 재외동포로 선정했다.

15일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최재형 선생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뒤 사업가로 성공했다. 자신의 재산과 삶을 한인사회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을 돕고 따뜻하게 품어준 모습 때문에 연해주 한인들은 선생을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라고 불렀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의 가난한 소작인의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9살이 되던 해 아버지와 함께 러시아 지신허 한인 마을에 정착했다. 어린 시절 집을 떠난 선생은 러시아 상선에서 일하며 언어와 국제 감각을 익혔고, 이후 연해주에서 사업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선생은 사업으로 얻은 재산을 개인의 부를 위해 쓰기보다 교육과 한인사회 지원에 아낌없이 사용했다. 교육이 민족의 미래를 바꾼다고 믿고 니콜라예프스크 소학교를 비롯해 연해주 일대에 32개의 소학교 설립을 지원했다. 철도공사 현장 통역으로 일하며 강제 동원된 한인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고, 한인사회의 권익 보호에도 힘썼다.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지원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 시 자금과 총기를 마련해 주고, 사격 연습 장소를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을사늑약과 러일전쟁으로 유린된 조국의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선생은 1908년 안중근, 이위종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했다. 함경도 국경 지대에서 일본국 수비대와 격전을 벌이는 등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이후에도 항일 신문인 대동공보 사장, 권업회 설립, 전로한족대표회의 명예회장으로 선출됐다. 1919년 대한국민의회의 외교부장을 맡아 항일운동에 전념했다.

1920년 4월 일본군은 연해주 일대에서 한인들을 학살한 '4월 참변'을 일으켰고, 당시 선생은 피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택에 남아 결국 일본군에 체포된 후 우수리스크 언덕에서 장렬히 순국했다. 일본군은 선생의 시신을 암매장했으며, 현재까지도 유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23년엔 순국 103년 만에 우수리스크 최재형 기념관 뒤편의 흙을 국내로 가져와 아내 최 엘레나 여사와 함께 합장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최재형 선생은 자신의 성공과 재산을 동포사회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나눈 진정한 지도자"라며 "가정의 달인 5월 연해주 한인들의 따뜻한 난로였던 선생의 삶을 통해 희생과 나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