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왼편 5도, 330도 잡아!"
지난 23일 경남 창원 해군교육사령부 조함훈련장에서 로봇 승조원 '파이봇(PIBOT)'이 당직사관의 명령을 복창했다. 이어 타기를 돌려 함정의 침로가 330도를 유지시키며 "330도 잡기 끝!"이라고 임무 완료 보고를 했다.
해군은 이날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협업해 '로봇 승조원 전투실험'을 최초로 진행했다고 24일 밝혔다. 해군함정이 항해를 하면 함장이나, 함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함교 당직사관이 함정의 침로, 속력 등을 정하는 조함 명령을 내린다. 이에 따라 타수 승조원은 자동차 핸들과 같은 타기를 조작해 함정의 침로를 잡고, 기관전령수 승조원은 함정의 속력을 변경한다.
이번 실험에서는 심현철 카이스트 교수 연구팀이 개발하고 있는 파이봇이 타수 업무를 맡았다. 전투실험은 △1단계 육상 조함시뮬레이션 활용 실험 △2단계 정박함정 실험 △3단계 실제 해상에서 주간항해 실험 △4단계 실제 해상에서 주·야간 장기항해 실험으로 구분해
진행되며, 이날 실험은 1단계이다.
파이봇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미래도전 국방기술 연구개발사업 중 하나다. 해양 유·무인 복합전투체계와 연계해 함정에서 로봇 운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방위사업청에서 57억 원을 출연해 2022년부터 카이스트 주도로 연구하고 있다.해군은 이를 활용해 현존 함정 승조원들의 업무를 경감시킴과 동시에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 등 미래 안보환경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해군과 카이스트 연구팀은 전투실험에 앞서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적절한 응답을 생성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인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활용해 파이봇이 함정의 조함 절차를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에 파이봇은 함정 내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명확한 명령 이행을 위해 명령을 복명복창하는데, 이날 실제 타수 승조원이 수행하는 것과 동일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이날 전투실험은 △침로 변경이 빈번한 협수로 △높은 파도로 함정의 침로가 수시로 바뀌는 악기상 △야간항해 등 해군 함정이 실제 항해하며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부여해 진행했다.
해군과 카이스트 연구팀은 파이봇의 명령 입력에서부터 실행 완료까지의 반응시간, 타기 조작의 적절성 등 데이터를 비롯해 편의성 등을 면밀하게 분석·평가할 계획이다. 보완사항을 도출하고 향후 2~4단계 실험에 적용해 실제 해상 운용에 대비해 안전 분야의 신뢰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전투실험을 주관한 김형준 해군전력분석시험평가단장은 "이번 전투실험은 함정 승조원 고유의 업무 영역이었던 조함을 로봇이 오류 없이 수행할 수 있는지 분석·평가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며 "해군은 이번 전투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함정에서 로봇을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함정 승조원들의 업무를 경감시키고 아울러 병역자원 급감, 비약적인 첨단기술 발전 등 변화하는 국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