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더라도 자살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본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모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업무상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며 "그로 인해 발병한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보고 정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서 정씨는 지난 2009년부터 SH공사가 발주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일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감리 업무를 해왔다.
그런데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로 공사가 지연됐는데도 공고한 분양일자를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데다, 감리 인원 일부를 빼면서 업무가 더 급격히 늘게 되자 정씨는 불면증을 호소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결국 정씨는 같은 해 12월 공사현장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유서에 '기술자 생활 30여년에 이렇게 힘들 때가 없었고, 발주처의 고압적인 압박, 협박 및 시공사의 역량 부족에 힘들고, 감리원의 감원에 따른 아픔 등과 그로 인한 불면증 등에 시달린다'고 적었다.
이에 정씨의 아내는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공단이 "정씨의 자해행위는 개인적 취약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우울증으로 정신적 억제력이 심하게 떨어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정씨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불면증으로 고생했고, 식욕감퇴 등 신체 이상 상태가 발생한 점, 우울증에 의한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자문의들의 소견도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