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하지 못한 '대등재판부'…고법 부장 유지될까

황재하 기자
2016.01.21 17:21

[the L리포트][법관의 꽃 고법부장]③대법원, 고법 부장 존폐 '고심'

◇ 더엘(the L) / 법관의 꽃, 고법 부장판사 ◇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청사(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1

전국 법원이 다음달 정기 인사를 앞둔 가운데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 대등재판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고법 부장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존 '고법 부장' 제도 대체하기 위해 도입한 '대등재판부'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2010년 12월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고 2017년을 끝으로 '지법 부장→고법 부장' 인사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법 부장들 중 사법연수원 24기까지만 고법 부장으로 임명될 수 있다.

기존 인사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도입한 것이 법관인사 이원화다. 단기적으로는 지법 부장급 판사들 가운데 고법 판사를 임명하고, 장기적으로는 1·2심 법원의 판사를 나눠 선발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한 번 임명된 고법 판사는 최소 10년 동안 고법에 붙박이로 근무한다. 1·2심 법원 사이 순환·교류 인사는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고법 판사의 전문성을 키우고 대법원장의 인사권으로부터 판사들의 독립성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이렇게 선발된 고법 판사들은 고법 부장과 함께 대등재판부를 이룬다.

기존 합의재판부가 연차 차이가 큰 고법 부장과 배석판사로 이뤄져 수직적 관계가 되기 쉬운 것과 달리 대등재판부는 실질적 합의를 지향한다. 기존 재판부는 배석판사들만 주심을 맡았던 반면 대등재판부는 재판장도 전체 사건의 7분의1에 대해 주심을 맡고 판결문을 써야 한다.

특히 대법원은 2011년 3월 발표한 '고법 합의부의 운영에 관한 지침'에서 "대등재판부를 구성하는 법관들은 재판절차 진행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그 법관들 사이 실질적 합의를 거쳐 사건을 처리한다"고 규정했다. 기존 재판부와 차이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시행 5년…법원 내에서 "기대 못 미친다" 지적

법관인사 이원화는 2011년부터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첫해 20명의 고법 판사가 임명되는 등 규모가 미미했지만, 이후 꾸준히 확대됐다. 현재 전국 고법에 23~29기 70여명의 고법 판사가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 안팎에서는 대등재판부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경력이 10년 이상 차이나는 고법 부장과 고법 판사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점도 지적되며 고법 부장을 없애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항소심 재판부를 대법원 소부처럼 대등한 법관들로만 구성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법률심인 상고심과 달리 법정에서 증거조사나 증인신문 절차가 있기 때문에 재판장 없이 재판을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조적으로 항소심 재판부에는 고법 부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법 부장을 없애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라는 관문도 넘어야 한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27조는 '고법에 부를 둔다'(1항), '부에 부장판사를 둔다'(2항)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고법 부장 폐지 앞두고 내부 고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은 이같은 내부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지난해 9월 내부 전산망에 법관인사 이원화를 기존대로 유지하고 계속 고법 판사를 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고법 부장 직위를 유지할 경우 고법부장 보임이 예정된 (지법 부장) 23~24기 외에 고법 판사 인원이 많이 늘어난 25기에 대해서도 인사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고법 재판의 질을 향상할 방안을 찾아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관인사 이원화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고법 부장 직위를 유지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법원행정처로서는 올해 정기 인사를 앞두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인사부터 고법 부장 인사 대상이 되는 연수원 23기는 첫 고법 판사를 배출한 기수다. 고법 판사들은 주심으로서 사건을 심리하느라 비교적 과중한 업무 부담을 짊어지는데, 지법 부장들만 승진할 경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면 형평성을 고려해 고법 판사들을 고법 부장으로 승진시키면 기존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소수의 판사들만 고법 부장으로 임명되며 벌어지는 문제를 해소하려고 법관인사 이원화를 도입했는데, 이를 위해 임명된 고법 판사가 오히려 고법 부장으로 승진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고법 부장 유지하고 '탈락자' 만드는 인사 정책 개선해야"

법원 내부에서는 고법 부장을 유지시키고 탈락자를 만드는 기존 인사 제도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현행 인사의 문제점은 여러 법관들 중 소수만 고법 부장으로 임명돼 나머지 판사들을 탈락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인사 적체를 감수하고서라도 탈락자 없이 고법 부장으로 임명하는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법 부장의 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고법 재판부의 수가 한정돼 있고,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법 부장들을 계속 증원할 재정적·행정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으로든 인사 대상자를 한정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지법 부장에서 고법 부장으로 이동하는 인사를 없애겠다고 했을 뿐 고법 부장을 없애겠다고 밝히지는 않았다"며 "고법 판사들만을 고법 부장으로 승진시키겠다는 방침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는 지법원장도 지법 부장들 사이에서만 선발하는 등 1·2심 인사를 완전히 나눌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다소 진통이 예상된다. 재경지법의 또다른 판사는 "기존에 여러 문제점이 지적된 고법 부장을 유지시키려면 부담감이 클 것"이라며 "과거처럼 탈락자를 만들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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