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신해철이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1년 반이 흐른 현재 소위 '신해철법'의 국회 통과여부에 의료계와 법조계의 관심이 크다. 의료사고에서 상대적 약자였던 유가족과 환자들은 특히 더 그렇다. 소송이 아니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포기했던 의료사고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의 길이 넓어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예강이에서 시작돼 신해철법으로
7일 현재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정록 새누리당 등이 발의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개정안을 기초로 지난달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위원회 대안이 마련돼 통과됐다.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가 남은 절차다.
애초 2014년 1월 의료사고로 사망한 9살 '예강이' 이름을 따 '예강이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이 법안은 신해철의 갑작스런 수술 후유증 사망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해철법'으로 불리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예강이' 유족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다가 해당 병원의 거부로 조정신청이 각하된 데서 예강이법 입법논의가 시작됐다. 현행법상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선 현재 의료기관이 동의하지 않으면 신청이 각하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2014년 3월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던 오제세 의원이 피해자가 조정신청을 하면 병원측이 자동으로 응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던 중 2014년 10월27일 신해철 사망으로 의사들의 과잉진료와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해철 유가족과 지인들은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를 돕자는 취지에서 '신해철법' 통과를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이에 김정록 의원도 2015년 11월 오 의원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힘을 보탰다.
신해철 사망직후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높아지며 법안 통과 여론이 높았지만 실제로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국회에서 신해철법은 심사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태였다.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선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상임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신해철법은 첫 단계인 상임위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안 된 상태였다. 발의된 후 아무 진전이 없던 상황이다.
국회에 발의되는 많은 법안 중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제는 상임위 단계에서 소위 상정조차 어렵다. 상정되는 순간 의원들은 양측에서 압박을 받고 판단·결정을 내리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한쪽의 큰 반발을 겪어야 한다. 때문에 찬반이 격렬한 경우 아예 상정을 꺼리기도 한다. 신해철법도 그런 상태에서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법안심사소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었다.
◇2월12일 국회 '신해철법 촉구 콘서트'로 상임위 통과 결실
신해철 친구인 남궁연씨 주도로 지난달 1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던 콘서트를 계기로 신해철법은 기사회생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면담을 거쳐 당론 채택과 공청회 개최를 약속받은 후 나흘만인 2월16일 전격적으로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 상정됐다. 다음날 열린 2차 소위와 상임위 전체회의도 차례로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예강이법 발의 후 2년여간 아무 진전이 없던 신해철법이 갑작스레 상임위를 단 이틀만에 통과한 것은 총선을 앞둔 정당들의 역학구도와도 관련 있다. 그간 신해철법과 큰 인연이 없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큰 관심을 보이며 돕겠다고 나서자, 더민주와 새누리 소속 보건복지위 의원들도 공을 빼앗길 수없다는 생각에 급하게 처리에 나섰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특히 국민의당에서 남궁연씨와 신해철 부인 윤원희씨를 가칭 의료사고 예방 및 생명윤리존중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영입하겠단 제안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거대 양당도 경쟁적으로 신해철법 상임위 통과를 도왔다.
◇'중상해' 범위가 핵심…시행령도 중요해져
오제세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조정신청을 하면 피신청인 동의여부에 상관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돼 있었다. 상임위 법안소위 논의에서는 '자동개시'할 수 있는 의료사고의 범위가 가장 문제가 됐다. 자잘한 의료사고까지 모두 자동개시를 하게 하면 의사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위원들은 어느정도의 제한에는 공감했지만 범위에 대한 이견은 있었다. '사망사고'를 포함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결국 '중상해'로 한정하게 하면서 중상해의 범위를 설정하는 문제가 핵심이 됐다.
결국 법안소위는 법률에는 세세한 중상해 범위를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시행령을 마련하면서 국회에 미리 보고하는 형식으로 중상해 범위를 추후 결정하도로 했다. 보건복지부 계산으로는 전체 의료사고의 4분의 1정도가 사망 및 중상해 사고의 범위에 해당된다.
◇'신해철법 추진 의원 낙선운동' 운운하는 의료계…반대 이유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로 대표되는 의료계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예강이법',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것부터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의료인과 환자 모두에게 필요한 제도라면 피해자측만 대변하는 듯한 명칭을 써선 안 된다는 논리다. 특히 신해철 사망사고에선 의료분쟁조정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송절차로 갔기 때문에 '신해철법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는 신해철법을 추진하는 환자단체 등에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아울러 법 내용에서는 조정원의 핵심기능인 5인 감정부에 의료전문가가 2명만 참여하는 것은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다. 의료인을 감정부에 더 충원해야 의료기관이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감정위원의 의료기관에 대한 조사권 남용가능성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국의사총연합이라는 의사단체는 더 강경하게 나섰다. 의사총연합은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며 "만약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가 이 법안의 통과를 추진하려고 한다면 법안 주도 국회의원들의 낙선 운동을 포함한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성명서를 지난달 18일 발표했다.
◇'총선 정국'…법사위·본회의 통과여부 미지수
지난 2일 열린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통과되리라 예상됐던 신해철법은 순서에 밀려 상정되지 못했다. 여야간 테러방지법 협상으로 저녁 늦은 시간 열린 법사위에서 의사일정 67건 중 61번에 들어 있던 신해철법은 본회의 절차 때문에 법사위가 정회되며 논의기회를 갖지 못한 셈이다.
이에 대해 단순한 의사일정 탓이 아니라 의료계의 강력한 이의제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사위의 경우 국회 입법과정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기 때문에 이익단체의 강한 의견개진이 몰리면 법안통과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당에서 오는 9일 본회의 개최를 야당에 제안했지만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따라서 법사위도 본회의 개최와 연동되기 때문에 9일 본회의가 없다면 4월 국회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4월13일 총선을 앞둔 국회가 의료계의 반발과 낙선운동 경고를 뚫고 신해철법을 통과시킬수 있느냐다. 결국 국회가 신해철법 통과를 바라는 여론과 통과반대를 외치는 의료계 사이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더 둘 것이냐가 문제다.
◇수술실 CCTV설치법은?
신해철 사망시 수술과정 영상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는 논란에 최동익 더민주 의원은 지난해 1월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거나 환자가 희망할 경우 수술 과정을 CCTV(폐쇄회로TV)로 촬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도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된 이후 상정되지 않았다. 역시 의료계 반대에 막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위 법안검토의견서는 "개인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설치 장소를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전제 하에 신속하고 공정한 분쟁해결 뿐 아니라 타 입법례와 마찬가지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판단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의료계는 "진료위축 및 개인정보보호 위반 등의 역기능도 적지 않다"는 의견서를 최 의원에게 전달하는 등 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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