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성폭행을 당했다. 검찰은 강간죄로 가해자를 기소했지만, 법원은 강제추행치상죄만을 적용했다. A씨가 성전환수술을 받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법원은 "성염색체나 본래의 성기구조, 남자로서의 생활기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이 없는 점을 고려해 여자로 볼 수 없어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1996년 대법원 판결문 중)
#성전환수술을 받은 B씨는 성폭행을 당했다. 법원은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를 인정할 때 생물할적 요소 외에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과 성역할 등과 같이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사회통념상 여성으로 평가되는 성 전환자도 포함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2009년 대법원 판결문 중)
법은 바뀌지 않았는데 비슷한 사건에 법원은 다른 판결을 내렸다. 사건의 결과가 달라지게 된 것은 성전환자를 '여성'으로 볼 것인지의 여부였다. 판사가 생각하는 '여성'의 정의에 따라 판결이 바뀐 셈이다.
법이 있어도 판사의 판단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판사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법을 집행할 때도 적용된다. 정해진 법과 규칙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집행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결과에 반영된다. 이를 집행하는 집단이 편견을 가지고있다면 법과 규칙은 예외를 낳고, 예외가 '관행'이 된다. 법과 제도는 최소한의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지만, 오히려 법과 제도가 있기때문에 더 문제가 되기도 한다. 법을 집행하는 집단이 '법대로하고 있다'는 최면에 빠지게 한다.
"성전환수술 후 1년 안됐으니 성별정정 안됩니다"
성전환수술을 한 C씨는 법원에 성별정정을 요청했다. 이를위해 정신과 진단서와 성전환시술 의사의 소견서, 부모의 동의서 등을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성별정정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전환수술을 한 지 1년이 안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법원이 정한 예규에 이런 내용은 없었다.
대법원의 가족관계등록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은 법원이 △연령 △혼인·자녀 △외모·성전환수술 △정신과 치료 △개인의 이력 △의도 등을 고려해 성별전환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성별정정을 원하는 사람은 △정신과 전문의 진단서나 감정서(2명 이상) △성전환시술 의사의 소견서 △성장환경진술서 △부모의 동의서 등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판례와 예규 등을 종합하면 성별정정을 위해서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어야 하고 성전환수술 등을 통해 생식능력이 없어야 한다. 또 앞으로도 생식능력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야 하고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한다.
한가람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법원마다 자의적으로 판단해 요청이 기각되는 경우가 있다"며 "예를들어 자궁절제수술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제출했는데 증명서에 '생식능력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문구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법원이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예규 자체가 국제기준과 비교해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성별전환 요건이)헌법상 자기결정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은 권리 등 개인의 기본권을 과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루인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활동가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어야 신청을 할 수 있는데 부모의 동의서도 요구하고 있다. 또 범죄 경력이 있다면 성별정정이 안되는데, 성별정정과 범죄 경력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에 대한 보고서에서 "성별변경 인정 전제 조건으로 신청자가 결혼상태가 아닐 것, 강제적 생식능력 제거 수술, 성전환수술 및 다른 의료적 조치를 받았을 것과 같은 가혹한 조건은 국제인권규범에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한국에 대해 "성별정정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요구되는 과도한 제한이 우려스럽다"며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의 법적 인정을 용이하게 할 것"을 권고했다.
이같은 유엔의 권고에 따라 외과 수술 등을 성별정정 요건에서 제외하는 국가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성기변형, 생식무능력 등 수술을 무조건 요구해 불합리한 증거를 과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성전환자에게 수술을 강요하고 건강상 문제를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몰타,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은 의료적 조치 여부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명시하고있다.
"예쁘면 '면제' 남자같으면 '현역'?"
트랜스젠더 D씨는 징병신체검사에서 3급 현역 처분을 받고 훈련소에 입소했지만 3일만에 귀가조치됐다. 또다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역시 3급 처분을 받았다. '성주체성장애' 진단서를 받고, 심리검사를 받고, 여성호르몬 처방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D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성주체성장애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D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병무청은 항소를 했다.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르면 성주체성장애는 경중에 따라 3급에서 5급으로 나뉜다. 군 면제가 되는 5급은 "6개월 이상 치료경력이 있거나 1개월 이상 입원력이 확인된 사람…군복무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정해놓고 있다. 성전환수술 등 외과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문제는 병무청이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이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무청이 김광진 더민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성전환자가 정신과적으로 군면제를 받은 사례는 21건인 반면, 고환결손으로 면제를 받은 사례는 104건으로 조사됐다.
박한희 SOGI법정책연구회 연구원은 "외과 수술을 하고 와라, 가슴 수술을 한 경우에는 보형물을 빼고 군대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한 사례까지 있었다"며 "수술을 받거나 정말 여자처럼 생기지 않으면 군면제가 나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준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또한 "병무청에 가면 아주 예쁘지 않거나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수술을 강권한다"고 지적했다.
외모와 외과적 수술 여부 등은 징병신체검사 규칙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병무청이 자의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일종의 '관행'이 되버린 셈이다.
박 연구원은 "규칙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며 "경도와 고도로 수준을 나누고 있는데 이는 고도의 여성이 있고 경도의 여성이 있다는 말인데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같은 징병제 국가인 대만은 '성심리이상'이라는 별도의 항목을 두고 있다. '심리검사보고서를 첨부한 성주체성장애 진단이 있거나 성전환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군면제를 받도록 정해놨다.
"성소수자 행사·재단 설립 허가하지 않습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사단법인 설립을 위해 서울시와 국가위원회에 설립 신청을 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2014년 법무부에 신청을 했지만 역시 불가 입장을 통보받았다. 통상적으로 단체 설립을 신고하면 20일 안에 허가를 내주도록 돼있다. 법무부는 "법무부는 국가 인권 전반에 관한 정책을 수립, 총괄, 조정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인권옹호 단체의 법인 설립 허가를 관장하고 있다. 귀 단체는 사회적 소수자 인권 증진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법무부의 법인설립허가 대상 단체와 성격이 상이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에대해 지난 1월 방한한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비온뒤무지개재단을 언급하며 "성소수자만을 위한 단체라는 이유로 불허 통보를 받았다"며 "법무부는 일반적인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만 등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모든 시민의 결사의 자유를 촉진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보편적으로 법 적용을 해야 할 공권력의 차별은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지난 2014년 서울시 서대문구청은 퀴어문화축제 장소 승인을 취소했다. 당시 서대문구청은 "이에 반대하는 여론이 너무 많아서"라며 "반대 민원이 들어온 것이 영향이 있다"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한국성적소수자인권센터는 '혐오폭력의 구조에 대한 연구'에서 "공적 권리를 박탈하는 폭력"이라며 "특정 집단에 차별적으로 정책을 운용하거나 차별하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행위는 법적 허용 여부 이전에 사회 전반에 만연돼있는 혐오에 올라타 반복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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