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문성일 부장
2016.04.20 13:47
[편집자주] 술자리에서 부담없이 나눌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얘기를 담으려 합니다. 너무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문제제기를 해보겠습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2001년 개봉)에서 담임 선생님(김광규)이 동수(장동건)와 준석(유오성)의 뺨을 잡고 흔들며 했던 대사입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엔 학교마다 학생들을 통해 각 가정의 재산 상황과 생활환경 등을 조사했습니다. 전화기는 있는지, 피아노·텔레비전·냉장고 등은 있는지, 당시엔 흔하지 않은 자동차 보유 여부까지 물었습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공개적인 질문에 전화기와 텔레비전이 있다고 손을 번쩍 든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피아노가 있다고 손들면 "와"하는 함성도 터져나오곤 했습니다. 반면 아무 것도 없어 손을 들지 못하는 친구는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떨구기도 했죠.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 학생들에겐 정말 잔인한 조사였습니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가정환경 조사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는 "아버지 뭐하시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거나 대기업 임직원인 친구들은 당당하게 적어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직업이 변변하지 못한 친구들은 쭈뼛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의 학력까지도 조사항목이었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학부모회'가 구성됐습니다. 이후 어머니들이 학교에 찾아오는 일들이 빈번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최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부정입학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로스쿨 입학 과정에서 전·현직 대법관 자제를 포함, 고위 법관이나 검찰 고위직 자제들의 불공정 의심 사례가 있다는 폭로성 주장이 나왔습니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에 따르면 일부 응시자는 자기소개서에 부모 직업과 가정 배경 등을 밝히는가하면, 면접관이 면접단계에서 부모의 이름이나 신분이 드러나도록 질문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해졌습니다. 말그대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식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라면 '현대판 음서제도'로 불릴 수 있는 중대 사안입니다.

실제 이런 질문이 이뤄질 경우 응시자 부모의 직업이 드러나고 상황에 따라선 합격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로스쿨 교수들 사이에선 '입학시즌이 되면 청탁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 변호사 133명은 '법조인 선발의 공정성'이란 공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자녀들이 로스쿨에 부정입학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대법관과 해당 로스쿨에 대한 정보공개를 교육부에 청구했습니다.

반박도 있습니다. 전국 25개 로스쿨로 구성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지난 19일 입장자료를 통해 "법 규정에 맞게 입학전형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시행하고 있음에도 일부에서 '불공정 입학'을 사실화해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앞서 로스쿨 입학생들의 '금수저' 논란이 일자 지난해 12월16일부터 올 1월28일까지 전국 25개 로스쿨의 입학·선발과정을 전수조사했던 교육부는 빠르면 다음주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교육부는 현재 불공정 입학 사례로 추정되는 서류를 로스쿨별로 20~30건씩 확보해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미 다수의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서류에 가족 정보를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면접때도 가족 관련 질문은 안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사법시험에서 드러난 법조의 배타적 독점과 법체계의 폐쇄회로화 현상을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된 로스쿨에서 부정입학 논란이 일고 있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유일하진 않지만 법조인은 분명 우리 사회의 엘리트집단입니다. 원칙없는 선발과 운영은 국민들에게 집단 이기주의와 오만함으로도 비춰질 수 있습니다. 법조윤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그중 사법비리 척결도 중요 사안입니다. 교육부가 조사 결과를 숨김없이 내놓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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