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직장인에게 점심시간 '쉼'을 허하라

김훈남 기자
2016.04.27 04:02

"넌 언제 들어가야 하냐? 난 1시까지 출입증 찍고 들어가야 돼" 졸업 후 10여년 만에 점심을 한 고등학교 동창 녀석은 내 안부보다 복귀 시간을 먼저 물었다. 출입증을 찍고 나온 시간부터 회사의 시계는 칼같이 돌아간다. 1시간을 넘기면 나태한 직원이라는 낙인과 함께 경고메시지를 봐야 한다고. 동창과의 재회, 한 그릇 식사에 초침을 똑딱이며 쫓아오는 괴물이 보인다. 어차피 일 안 끝나면 퇴근도 안 시켜 줄 거면서….

2년 전 동창과의 식사에서 떠올린 '직장인의 점심' 아이템을 최근에서야 기사화했다. 취재과정에서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상투적인 넋두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하소연이 쏟아져 나왔다.

채찍질 당하는 경주마 마냥 눈앞의 덩어리를 입에 쑤셔 넣어야 하는 A, 눈치 안 보고 1시간만 밥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B, 상사와의 자리가 불편해 소화불량에 시달린다는 C. 한 끼 식사의 의미가 오후 근무를 위한 열량 충전에 지나지 않는 ABC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동시에 주어진 1시간을 알차게 쓰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밥보단 여유시간을 즐기고 싶어 편의점으로 향하거나, 무뎌지는 모습이 싫어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를 찾는 이들. 식당에서 줄서는 시간이 아까워 30분 먼저 나오는 꼼수를 부리는 회사원들. 하나같이 점심시간을 전쟁같이 보내고 있다.

'한 점 쉰다'는 점심시간마저 전쟁이 돼버린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여유있는 점심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앞뒤 5분씩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는 한탄이 줄을 잇는다. 30분 연장까진 황송해서 바라지도 않는다나.

매일 낮 시간, 전쟁같은 직원들의 생활에 기업이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몇몇 기업은 '점심시간 = 낮 12시~1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유동적으로 점심시간을 운영하기도 하고, 30분 더 점심시간을 보장하는 곳도 생겨났다.

식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직 '직장문화'라 부르긴 부족하다. 직원의 만족도는 생산성으로 이어진다고 하지 않나.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이제 점심시간마저 전쟁같은 이들에게 쉼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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