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물, 나무가 움직이는 것과 흡사했고, 나는 새보다도 빨랐다."
조선에서 첫 열차가 운행되던 날,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던 어떤 교통수단보다 빨랐다. 거대하고 시커먼 쇳덩어리는 11자로 난 길을 따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1시간에 무려 22.6km나 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 약 33km 떨어진 인천까지는 1시간30분 걸렸다.
117년 전인 오늘(1899년 9월18일) 우리나라에 최초 열차인 경인선이 개통됐다. 경인선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이자 물자 운송의 혁명적 변화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경인선은 조선의 '눈물'로 개통된 열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물자는 배로 운송됐다. 1883년 인천 제물포 항구가 개항하면서 물자 운송은 점점 활발해졌다. 한강을 따라 움직이는 배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조선에서는 열차의 필요성이 조금씩 제기됐다. 하지만 선뜻 나서기는 어려웠다. 철도를 만들 기술도, 돈도 없었기 때문.
이 상황을 처음 사업의 기회로 생각한 건 미국정부였다. 1887년 한강 수심 측정 등을 진행하며 철도사업계획 제안서를 조선에 제출한다. 결국 기업가였던 주한미국전권공사인 제임스 모스가 이 사업권을 따냈다.
모스는 조선정부와 '경인철도특허조관'을 체결하는데, 이 계약에 따르면 모스는 경인선을 12개월 내 기공식을 마쳐야 하고 3년 내 준공해야 했다. 계약을 위반할 경우 특허의 효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계약도 오래가지 못했다. 철도사업권을 탐낸 일본 때문이다. 사업이 시작된 후 일본은 미국에 조선 정치적 상황이 악화됐다는 루머를 퍼뜨렸고 이 때문에 미국 투자자들을 투자금을 서서히 회수하기 시작했다. 모스는 결국 1897년 자금난에 시달려 일본에 사업권을 넘겼다. 일본은 이 사업을 물려받아 불과 2년 만에 철도를 완성시켰다.
첫 개통된 경인선은 서울 노량진부터 인천역까지였다. 열차는 부평, 소사, 오류동 등 7개 정거장을 거쳤다. 1년 후인 1900년에는 경성역(서울역)까지 열차가 연장됐다.
우리나라 물자 운송의 혁신적 역할을 한 경인선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조선의 슬픔이 함께 어려 있다. 당시 일본은 이 철도를 준공하기 위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일본은 철도를 장악한 후 우리나라 식민지배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