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이익에 눈이 멀어 진실을 외면하는 변호사의 모습은 영화 속 '클리셰(Cliché)'다. 뻔하고 진부한 이 장면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그대로 연출되고 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고 공언해놓고 호시탐탐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8회 변론기일에선 고영태씨의 범죄경력을 조회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줄줄이 들고일어났다.
"고영태 사람들의 진술이 조작됐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고영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범죄경력이 유력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아직 법정에 나오지도 않은 고씨를 '범죄자'로 만들어 증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겠다는 전략이다.
차은택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시간 20여 분의 신문 시간 중 상당 부분을 고씨와 최순실씨가 내연관계였는지를 들춰내는 데 할애했다. "고씨가 최씨와 성관계를 해야 하는 고역에 대해 토로하지 않았느냐"와 같은 자극적인 질문의 연속이었다.
'언론 플레이'는 덤이었다. 법정 밖에선 "괴롭고 구역질 나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나타나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고 말했다. 엉뚱하게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을 고씨에게 돌렸다.
25일 열린 9회 변론에서 3월 13일까지 선고를 해야 한다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에 대해 심판의 공정성까지 문제 삼았다. 대리인단이 신청한 증인을 신문하게 해주지 않으면 '중대결정'을 내리겠다며 헌재를 압박하려 들기까지 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거의 협조하지 않고 있다. 이진성 재판관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다시 제출하라고 한 '세월호 7시간 행적' 자료는 2주일째 감감무소식이다. 박 대통령이 최씨의 도움을 정확히 언제까지 받았는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어느 부처에서 담당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8회 변론에서야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수 있는 이를 포함, 39명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시간 끌기에 나섰다.
특검 활동이 끝날 때까지 대통령 직을 유지하면 박 대통령에게는 구속수사를 피할 가능성이 열린다. 대리인단의 지연 작전이 노골화될 수록 이익을 얻는 쪽은 박 대통령인 셈이다. 어쩌면 대리인단에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처음부터 뒷전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