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출간한 회고록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회고록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이 담기면서 광주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법적 소송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5일 "'전두환 회고록'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광주 시민들을 폭동에 가담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어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소송 여부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소송인을 특정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사자명예훼손죄를 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단은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 증언자인 피터슨 목사와 고(故) 조비오 신부의 실명을 거론하며 증언 내용을 '거짓'으로 주장한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 자문으로 활동 중인 정인기 변호사는 "(보수 논객인) 지만원씨가 계엄군의 증언을 토대로 5·18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했다고 해서 처벌하긴 어렵다"며 "다만 개인을 지칭해서 명예훼손을 했다면 법적 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30년 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 3일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했다. 10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쳐 총 3권으로 구성된 회고록에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부터 1988년 대통령 퇴임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가장 논란이 거센 대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부분이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 제물'에 비유했다. 그는 책에서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며 "공수부대원들의 자위권 행사"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뭐가 잘났다고 부부가 회고록을 내고 국민을 다시 한 번 고통스럽게 하는지 참으로 괴이하다"며 "공식확인이 되지 않은 명령자에 대한 진실규명이 새 정부에서 반드시 시작돼야 하고 5·18 진실에 대한 진상 백서도 반드시 작성이 돼야한다"고 밝혔다. 광주시의회, 전남대학교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5·18 3단체(5·18 유족회, 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등도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정 변호사는 "출판물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상당히 넓게 보장되고 있어 일부 내용이 잘못됐다고 해서 판매 금지나 시정 요구를 내리기 쉽지 않다"며 "책의 내용이 대중적, 역사적, 법률적으로 판단된 상황을 완전히 뒤집음으로써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출판물 발행이나 배포 금지 등의 가처분신청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통령 회고록에 대한 엄정한 잣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대통령 회고록은 대통령이 직접 자기 경험을 되돌아보고 쓴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그 어느 기록물보다도 높다"며 "역사적인 사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포함한 회고록에 대해서는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 등이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쪽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책에 실었기 때문에 따로 해명할 부분은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