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가 작아 중학교 때부터 출석번호가 늘 한 자리였어요.” 직장인 김모씨(34)는 키 순서대로 지정했던 출석번호 탓에 학창 시절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있다. “키 작은 애들끼리 앞번호에 모여있으니 더 놀림감이 됐다”며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시절이라 상처로 남았다”고 말했다.
#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씨(39)는 몇 개월 전 딸아이의 출석번호를 알고 의아했다. 전체 인원이 30여 명인 학급에서 딸 아이 출석번호가 50번대였다. 학교에서 남학생 출석번호를 1번, 여학생 번호를 51번부터 배정한 탓이다. 이씨는 “성을 구별해 출석번호를 주는 방식이 아이들에게 성차별적 인식을 심어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출석번호 지정을 두고 일부 학교들이 고민에 빠졌다. 키, 성적, 성별, 생일, 지역별로 번호를 정하는 관행이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와서다. 현재 대부분 학교는 출석번호를 이름 가·나·다 순으로 지정하고 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남학생에게만 앞번호를 부여하는 관행이 성차별이라고 규정하며 시정을 권고했다.
각 시도 교육청도 출석번호 지정 시 인권 침해 요소를 지양할 것을 일선 학교에 권고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교육청은 지난해 3월 초·중·고교에 ‘여학생 인권 보장의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안내문’을 발송했다.
안내문에 담긴 ‘여학생 인권 가이드’에 따르면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불합리한 분리 및 구분 지양 방안의 하나로 성별, 생년월일, 이름 가·나·다 순 등 출석번호 정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이름 가·나·다 순서조차 누군가에게는 차별 행위가 될 수 있다”며 “각 학교에 차별 없이 출석번호를 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다음 학기에 앞서 한 차례 더 강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차별적 기준으로 출석번호를 정하는 학교들이 있다. 9일 인권위에 따르면 올해 출석번호 부여방식으로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은 2건이었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는 출석번호 지정 시 남학생은 1번, 여학생은 30번부터 부여했다 가·나·다 순으로 다시 부여했다.
이날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받은 서울 A초등학교의 경우 남학생은 1번, 여학생은 50번부터 출석번호를 부여했다. 교장은 지난해 말 4~6학년 학생·학부모·교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로 부여방식을 정했다고 했다.
조사 결과 '남학생 1번부터, 여학생 51번부터 가나다순으로 정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45.1%로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나머지 선택지는 '성별 구분없이 가나다 순으로 번호를 정한다'(29.9%), '한 해는 남학생, 다음 해는 여학생을 1번부터 격년제로 정한다'(25%)였다.
인권위는 그러나 성차별적 관행이라고 봤다. 어린 학생들에게 남녀 간 선·후가 존재한다는 차별의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인권위는 “성구분 없이 가·나·다순으로 출석번호를 지정해도 학교행정이나 학급운영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며 “남학생 앞번호 지정은 여성인 학생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