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열심히 신고해주세요."
2018년 하반기,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한 남편이 아내를 경찰에 신고했다. 남편 A씨가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면 매일 아내 B씨가 마신 소주병 7개가 쌓여 있었다. A씨가 외벌로 버는 돈은 생활고로 우울증을 앓던 B씨의 술값으로 나갔고, 7살 아이는 방치됐다. 물리적 충돌과 학대는 없었지만 아이는 정서적 학대와 스트레스로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남편은 아내의 처벌을 원치 않았다.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을뿐 '제발 아내를 말려달라'는 요청만 했다. B씨의 알코올중독에 대한 치료가 급한 상황에서도 A씨는 가정을 지키겠다는 마음에 진술을 거부했다. 뾰족한 수가 없는 가운데 부부다툼과 경찰 신고만 거듭됐다.
해당 사건을 맡은 경력 21년차 관악경찰서 학대예방경찰관(APO) 곽현정 경위(45)는 "관계자가 진술을 안하면 사건 진행이 안된다"면서 "B씨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그 고리를 끊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A씨는 완강했다. 2019년 B씨가 술을 먹고 자해를 해 입원해도 '알코올중독 입원치료를 받는 아내가 불쌍하다'며 아내의 요구대로 퇴원을 일찍 시켰다. B씨의 음주는 반복됐다.
그러나 곽 경위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일주일에도 몇번씩 전화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보호 사건'으로 입건되면 전과도 남지 않고 가정도 보존한 채 국가 명령으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활고로 인한 스트레스가 문제라고 파악한 뒤에는 환경개선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구청 등과 협조해 주거지원에 나섰다. 이후 생계비, 아이의 심리상담 등에 대해서도 지원책을 연결해줬다.
A씨는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경찰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곽 경위는 "A씨가 처음으로 조사에 응했을 때 '첫 단추를 끼웠다'고 생각했다"면서 "다행히 아이가 이제는 건강을 회복해 안심이다"고 했다. 현재 B씨는 입원치료를 6개월째 받고 있으며, 아이도 심리상담을 통해 섭식장애를 부분 극복해 키가 크고 몸무게도 늘었다.
비록 한 건 해결했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사건도 많다. 상당수의 가정폭력·아동학대 사건은 단번에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A씨 사건도 보호 사건으로 분류된 시점은 2020년 하반기로, 첫 신고 이후 2년이 넘게 걸렸다.
곽 경위가 같은 2018년 접수한 다른 사건의 피해자 C양은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발음이 어눌하다고 놀림 받았고, 집에서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폭행을 가했다. 가정폭력에 지친 어머니는 아이를 방치했다. 즉각 분리조치를 취하고 C양을 아동복지시설로 보냈지만 상황은 악화했다. C양이 걸핏하면 시설을 무단이탈해 온라인 채팅을 통해 성인남성을 만나는 등 방황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 뒤 C양은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이제는 중학생인 C양이 어머니를 때린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가정폭력 가해자가 된 셈이다. 보호시설에 보내는 것 이외에도 상담치료 등의 돌봄을 지원했지만 C양의 방황은 계속된다. 최근에는 자존감을 세우기 위한 진로교육을 시도하지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곽 경위는 "열심히 일을 해도 (문제가) 계속된다는 압박감이 크다"면서 "피해자가 가정으로 돌아가 2차 피해를 받을 때면 조치를 취해도 안된다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그럼에도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경찰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피해 아동 등에 도움을 줘야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를 위해 지난해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올해 1월에는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APO들끼리 서로 사례를 공유하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찰청-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공동협의체 현장대표로 참석해 의견을 제시했다. 중학교 2학년인 딸을 보면서 실생활에서도 업무의 막중함을 느낀다.
곽 경위는 "(신고) 한 번으로 해결되지 않아 인내심과 긴 호흡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면서 "신고 뒤에도 피해자인 가족구성원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정 내 문제가 누적된 뒤에야 신고로 표출이 되기에 단순한 신고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곽 경위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주변인의 신고가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말한다. 곽 경위는 "남의 일이라고 눈감지 말고 신고해주셔야 한다"면서 "신고자 정보를 유출하면 처벌을 받기에 걱정하지 마시고 신고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경찰을 조금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최근 '정인이 사건' 등 안좋은 사건이 많았지만 성찰의 계기로 삼고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