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을 하루 앞둔 15일 정오의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개고기'라는 팻말이 걸린 좌판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도착했다. 중년의 남성이 오토바이 뒤편의 비닐 덮개를 걷어내자 빨간색 고무대야가 드러났다.
남성은 고무대야에서 중형견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절반으로 잘라낸 개 지육(도축한 개에서 털·내장 등을 제거한 형태)을 꺼내 좌판에 올려놨다. 좌판을 지키던 상인은 만원짜리 지폐가 묶인 두툼한 돈다발을 중년 남성에게 건넸다.
돈을 받은 남성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1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오토바이가 어디서 온 것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상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19년 10월 경동시장에 남아있던 개도축장 두 곳이 문을 닫은 것을 계기로 서울에서 개 도축행위가 중단됐다며 '개도축 제로도시'를 선언했다. 하지만 도축장만 사라졌을 뿐 '개시장'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이날 오전 경동시장의 개고기 판매 상인들과 인근 보신탕집 사장들은 초복을 하루 앞두고 지육 거래량이 평소의 두 배정도 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19(COVID-19)가 발생하기 전에 비하면 2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현재 경동시장에서 개 지육을 파는 가게는 4~5곳이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쯤에는 15~20곳에 달했지만 하나둘 문을 닫고 업종을 바꿨다.
15년째 경동시장에서 개고기를 팔고있는 A씨는 2년 전 간판을 '00영광굴비'로 바꿨다. 경북 영덕에서 개농장을 운영하며 개 지육을 공급해주던 업자가 굴비 건조로 업종을 바꿨기 때문이다.
A씨는 "동물단체 카라가 개농장 앞에 와서 하루 종일 꽹과리 치고 시위하지, 개고기 수요는 줄지 그러니까 냉동창고 같은 시설도 다 굴비 저장하는 걸로 바꾸고 업종을 아예 굴비 건조와 유통으로 바꿨다"고 했다.
A씨도 마침 개고기를 찾는 손님이 줄면서 업종 변경을 고민한던 차였다. A씨는 "개고기 수요가 감소하는 속도보다 개고기 공급 감소가 더 빨라 개고기 가격은 매년 오르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A씨 가게 앞 한쪽에는 개고기를 보관하는 냉장고가 남아 있다. 5~6년 전에는 하루 최대 열 마리도 팔았지만 요즘은 이틀에 15~20㎏ 크기 개 한 마리를 판다. A씨는 '시골'에서 한 근(600g)에 8500원에 개 지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경동시장 상인들은 개 지육 공급감소로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B씨는 "작년 이맘 때 한근에 7500원이었던 게 꾸준히 500원씩 올라서 지금은 한 근에 1만원"이라며 "우리는 따로 공급해주는 도축장이 있지만 도축장이 줄면서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했다.
가격이 오르자 안 그래도 감소세였던 개고기를 찾는 손님이 더 줄었다. A씨는 "오늘도 닭집에는 손님이 몰리지만 개고기 파는 곳은 한가하다"며 "개고기는 1인분에 2만원 어치는 사야하는데 생닭은 1만원에 4~5마리를 살 수 있다"고 했다.
경동시장 상인 C씨는 경기도에 있는 도축장에서 개 지육을 구매한다. 경기 남양주 퇴계원 모처에 도축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청량리에 있는 도매업체로 일주일에 1~2번 개고기를 배달해준다. 청량리 소재 개고기 도매업체에서는 경동시장 등 주변 상인과 보신탕집이 주문하면 오토바이로 개고기를 배달해 준다.
해당 개고기 도매 업체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었다. 20여년간 동불보호 활동을 해 온 활동가들도 개고기 유통업자를 만난 적이 없다. 개농장과 도축장에는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지방에 있는 도축장에서 서울로 개고기를 유통하는 업자의 사무실이나 거처를 알 수 없었다. 개 도축은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도축장은 경기도 일대에 숨어있다"며 "인적이 드문 곳에 있고 주변에 개들이 많아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도축업자를 만나기 위해 개농장에서 잠복하다 쫓아가기도 했지만 도살 현장을 잡지 못했다"고 했다.
전진경 동물행동권 카라 대표는 "경기 여주나 의정부, 충청도, 전라도, 경상북도 등 지방에 아직 도축장이 꽤 남아 있다"며 "인근 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개한테 먹이는 등 비위생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고 했다.
도축된 개는 이른 오전 서울로 '배달'된다. 서울 동대문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ㄱ씨는 "경기도 쪽 개농장에서 15년째 고기를 받고 있다"며 "오전 7시에 배달이 오면 2시간 이상 조리해야 오전 10시부터 손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ㄱ씨 가게는 이 농장에서 매일 아침 평균 60근 크기의 개를 매일 한 마리씩 받고 있다. ㄱ씨에게 개를 공급하는 경기도 개농장은 더 이상 추가 거래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총괄하는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위원회)는 최근 개 사육·도축장 현황과 영업 실태·대국민 인식 등을 조사했다. 정부 차원의 첫 조사지만 결과는 공개하지 않는다.
위원회 관계자는 "도축장이나 사육장 현황이 공개되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사회적 논의를 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위원회에서 공개하지 않기로 하고 조사했다. 개 도축은 법에서 금지하거나 허용하지 않아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